중국의 방역 정책인 제로 코로나가 야기하는 경제적, 사회적 이슈는 최근 여러 곳에서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글들을 읽으며 이쯤에서 중국이 왜 이리도 제로 코로나를 고집스레 견지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 이유를 다뤄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잘 알다시피, 코로나19 바이러스는 2019년 11월 우한에서 처음으로 발생, 보고되었다.
정확한 사태 파악이 어렵던 초창기부터 중국 정부는 제로 코로나로 대변되는 방역 정책을 내놓았고 시종일관 그 정책의 큰 틀을 고수하고 있다.
제로 코로나란,
위드 코로나와 대치되는 개념이다.
단 한 명이라도 코로나 감염자가 출현하면 해당 지역을 작게, 혹은 넓게 봉쇄, 격리하고 PCR 검사를 통해 추가 감염자를 색출해내 분리, 치료하여 감염자 수가 0(제로)이 될 때까지 이를 지속하는 폐쇄형 대응을 뜻한다.
2년이 넘는 시간,
동, 구 단위의 이러한 봉쇄는 일상이 되었고, 2022년에 들어서만도 상하이시(인구 2,500만), 창춘시(인구 906만), 선양시(인구 307만), 지린시, 훈춘시, 선전시, 둥관시 등 다수의 도시가 전면 봉쇄에 들어갔다.
지금도 중국 45개 도시에서 이렇게 부분적, 혹은 전체적인 봉쇄를 통해 격리된 인구만 3억 7천만 명에 달한다.
주민 사이의 접촉을 막아 내부적 전파를 줄이고, 도시 간 이동을 금지하여 외부적 확산을 예방하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물리적 방법이 없다.
중국이 코로나 발병 초기에 이 제로 코로나로 살아남고 효과도 톡톡히 봤다.
코로나 발병 초기의 사망률이나 중증 전환률이 얼마나 높았던가?
우한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속수무책이었던가?
근데 중국 정부가 처음부터 들고 나온 이 제로 코로나 방역 정책이 우한을 구했다.
그 당시 코로나의 독성과 중국의 모든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이 제로 코로나는 중국이 내놓았던 ‘신의 한 수’가 분명하다.
하지만 이로 인한 부작용도 크다.
봉쇄로 인해 격리된 주민들은 일할 수 없다.
자영업자는 돈벌이가 불가능하다.
생산자는 사업장을 가동할 수 없다.
당장의 임대료는 나가는데 직원 월급은 제때제때 지급을 해야한다.
상황이 어렵다고 사업을 정리할 수도 없다.
단기적인 손실은 피할 수 없으니 삼 개월, 반년을 못버티면 결국은 망한다.
타 지역으로부터 물자를 이송해올 방법도 거의 없다.
봉쇄 지역의 완제품 생산만이 문제 되는 것이 아니라, 봉쇄 지역의 원자재, 부품 등의 생산이 중단되면 봉쇄 외 지역의 생산까지도 불가능해진다.
이것이 중국 전체, 아니 글로벌 공급 대란의 원인이다.
이미 중국은 올해 경제 성장 목표인 5.5%에서 멀어져 1분기에 4.8%로 추락하였고 IMF는 올해 예상 성장률을 4.4%, 노무라 증권은 3.9%로 하향 조정하여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별 상관없다.
중국은 언젠가 회복 가능한 거대한 내수 시장이 있고,
그간 추진해온 자급자족 경제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는 기회도 된다.
실제로 2020년 코로나 발병 초기, 중국이 전국적인 봉쇄를 했고 경제적 부침을 겪었다.
하지만 2020년이 끝나며 한 해를 마감했을 때, 대규모 사업장이나 소상공인까지 큰 손해를 본 경우는 많지 않다.
단기간의 경제적 난국을 버틴 사업자들은 정부의 경기 부양책과 시민의 보복 소비로 그 손실을 회복했다.
버티면 기회가 있는 것이다.
그만큼 내수 시장이 크다는 것은 무서운 것이다.
글로벌 공급 대란으로 미국의 인플레이션, 스태그플레이션이 가중되며 발생하는 CPI 상승, 연준의 금리 인상 등을 통해 기축 통화국인 미국을 엿 먹일 수 있는 것은 완전 덤이다.
하지만 이 경제적 부작용 뒤로,
한 달째 아무런 수입 없이 집 안에 격리당한 이들이 보급받은 식료품은 천차만별이다.
열흘 새 밀가루 한 봉지만 받은 지역의 주민들도 있고, 받은 식료품이 변질되고 식용 기준 미달인 것들이어서 탈이 난 주민도 많다.
그나마 자력갱생을 위해 진행되는 단지 별 공동구매에서는 평소의 몇 배에 달하는 물가의 식료품이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다.
수입이 끊기고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무산계급’들의 경우, 도대체 무엇을 먹고 무엇으로 살라는 것인지 ‘공산당’은 말이 없다.
봉쇄의 시국과 상관없이 무심히 세상 밖으로 나온 갓난아이를 무증상 감염자인 부모와 분리해 격리한다.
태어나자마자 밀접 접촉자로 분류된 것이다.
“젖을 물리게 해 주세요.”
확진자 격리 수용소로 끌려가는 산모의 울부짖음은 하늘을 찢고 산을 무너뜨릴 듯하다.
두 살 난 아이가 코로나에 걸리자 그 아이만을 격리 수용소로 보낼 수 없기에 아이의 엄마는 아이와 얼굴을 맞대고 큰 숨을 들이켠다.
하지만 끝까지 양성이 나오지 않은 엄마는 아이를 데려가기 위해 문 앞에 선 공안들을 향해 식칼을 뽑아 들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개인의 자유도, 민주도, 인권도 없다.
정부 지원금을 빼돌리는 부패한 관료들과 원칙만 읊으며 민생은 나 몰라라 하는 공무원들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 이외의 모든 이들은 이 고통 앞에서 평등하다.
하지만 상관없다.
“생명이 최우선시되어야 한다! “
4월 13일 시진핑 주석은 중국의 휴양도시 보아오에서 이 말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목숨이 담보가 된 것이다.
그러니 목숨 외의 것들인 공정, 인권, 자유, 권리는 끼어들 틈이 없다.
이렇게 심각한 부작용들을 수반한 제로 코로나임에도 중국은 ‘상관없는 척’ 해가며 부작용들을 억지로 깔고 앉아 요지부동이다.
정말 상관없을까?
정말 괜찮은걸까?
물론 아니다.
중국 공산당도 무너지는 경제에 버겁고, 불타기 시작하는 민심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여전히 기승전 제로 코로나다.
중국 전문가들은 공산당이 제로 코로나 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을 크게 ‘세 가지’로 분석한다.
하지만 속내를 알고 보면 그 세 가지 이유가 됐던, 백 가지 변명이 됐던 결국은 ‘단 한 가지의 정치적 원인’으로 귀결된다.
‘중국 공산당의 전체주의 수호’
귀결되는 그것은 바로 ‘중국 공산당의 전체주의 수호’이고 나머지는 전부 이것을 포장하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전체주의는 개인의 모든 활동은 오로지 전체, 즉 국가와 민족의 존립과 발전을 위해서 존재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국가가 행하는 개인의 자유에 대한 억압과 통제는 당위성을 갖는 그런 이념이다.
중국의 전체주의 속에서 공산당은 전권을 장악하고 국민 개인은 전체 속에서 비로소 존재의 가치를 찾는다.
그리고 이를 위해 국가는 절대적인 권위와 강력한 명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결국 제로 코로나는 오로지 일당독재 공산당의 정치적 권위를 지키기 위해 고수한다는 것이다.
그럼 그 각각의 세 가지 이유를 집어보며 이 세 가지가 모두 ‘공산당 전체주의 수호’로 귀결되는 신비로운 과정을 따져보자.
1. 전문가들이 분석하는 그 첫 번째 이유
시진핑 주석 3 연임을 위한 완전무결 리더십 실현
올 년 10월로 예정된 공산당 당대회를 통해 시진핑 주석은 국가주석 3 연임 대관식을 준비 중이다.
덩샤오핑 이후, 중국 국가 주석은 두 번만 연임하고 후계자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구조가 되었다.
보기 좋은 공화정 형태였던 것이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은 등장과 함께 이 부분을 헌법까지 뜯어고쳐 가며 장기 독재가 가능하도록 바꿨다.
물론 반발도 많았다.
독재를 좋아할 사람은 없으니까.
그걸 어렵게 잠재우고 겨우겨우 가능하도록 만든 것이다.
여전히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그런데 이 불안한 대목에서 실정이 나오면 안되는 것이다.
만약 제로 코로나의 방역 전략을 수정한다면 위드 코로나 시대의 시작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서방국가들의 위드 코로나를 비과학적이고 무책임한 국가적 방임으로 치부하며 체제 경쟁 구도를 만들어 선전해온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는 진퇴양난이다.
마치 미국과 러시아가 누가 먼저 달에 사람을 보내느냐를 가지고 경합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간 미국이 코로나로 고생할 때 중국 외교부가 얼마나 깐족거리며 약을 올렸는가?
이제 와서 현실을 받아들이고 앓는 소리 하기에는 큰소리를 너무도 많이 치고 다녔다.
자국 인민과 세계를 대상으로 극강의 선전을 해오던 터라 이제 와서의 정책 변화는 국민의 시선 속에 마치 꼬리를 내리는 듯 비칠까 두렵다.
시진핑 주석과 방역 정책에 흠집이 난다면 중국 공산당을 상징하는 시진핑 주석의 3 연임 차 권위에 흠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전체주의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이런 미세한 균열이다.
너무도 단단한 것은 코어에 생긴 작은 균열에도 쉽게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진핑 주석의 세 번째 연임이 확정될 때까지 중국 정부는 버텨야 한다.
2. 전문가들이 분석하는 그 두 번째 이유
중국산 치료제 개발까지 시간 벌기
우리는 완벽한 감기 치료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들어본 적 없다.
증상을 완화하고 합병증을 예방하는 정도가 그 최선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왜 존재할 수 없는 정답에 모든 것을 걸고 치료제 개발까지만 견뎌보자고 고집을 부리는 것일까?
완전한 치료제가 없다면 가장 좋기로는 백신 접종을 통해 감염을 예방하고 면역력을 증강시키는 것이다.
중국은 해외의 백신을 부정하고 중국이 자체 개발한 백신만을 고집하고 있다.
하지만 이 중국산 백신은 효능이 미비하다.
늘 중국에 매수당하는 WHO조차 중국산인 시노백의 불활성화 백신의 감염 예방률이 50% 수준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더군다나 모더나, 화이자의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백신이 아닌 경우, 오미크론에 대해 감염 예방뿐 아니라 중증으로의 전환 예방에 거의 효과가 없음이 이미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80세 이상 노인들의 낮은 접종률, 오미크론의 강한 전파력 탓만 하며 자국 백신의 무력함은 끝까지 부정하고 있다.
물론, 이제 와서라도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타국의 백신을 수용하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안된다.
그 타국이 바로 미국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주적인 미국.
미국 백신을 인정하는 순간, 그간 미국에 맞서 체제경쟁을 이어왔고, 코로나 방역에 있어서 만큼은 승리를 선언한 중국 정부에 벽돌 자국만 한 균열이 생긴다.
정권의 이념과 노선을 희생하지 않는 한 수용이 불가능해진 차선책으로 인해 선택은 결국 다시 제로 코로나로 되돌아간다.
3. 전문가들이 말하는 그 세 번째 이유
중국 의료 인프라의 부족
중국의 의료 인프라는 상대적으로 열악하다.
국민 천 명당 의사는 한국이 2.5명인데 반해 중국은 1.5명이다.
천 명당 병상의 수는 한국 12.5개의 절반도 못 되는 4.2개이다.
그렇기에 중증 환자와 사망률이 높았던 코로나 발병 초창기, 중국은 우한에서 호되게 당했다.
그리고 미국과 유럽이 쑥대밭이 되던 2020년과 2021년, 중국의 제로 코로나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역 정책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당초의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생존을 위해 변이 했고, 증상은 약하나 전파력이 빠른 쪽을 택했다.
그것이 오미크론 BA.1, BA.2이다.
지금의 중국 내 확진자 중 대부분인 이 오미크론에 감염된 ‘무증상 감염자’들이다.
증상이 없기에 격리 수용소로 끌고 간 감염자들에게 약조차 제공하지 않는다.
두려워하는 그들을 안심시키고 외부적인 반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춤추고 노래하는 레크리에이션 활동이 치료라면 치료일까?
과연, 진짜 인프라 부족으로 죽어 나갈지 모를 인명이 걱정일까?
아니면 십계명을 든 모세처럼 제로 코로나를 높게 쳐들고 여기까지 달려온 공산당의 권위가 걱정일까?
“제로 코로나 정책은 중국에서 확진자와 사망자를 줄이는 데 있어 혁신적인 역할을 했지만, 멀리 보면 장기간 이러한 정책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경제 발전 정상화와 전 세계적인 방역 해제 흐름에 적응하기 위해 중국도 다시 문을 열 필요가 있다.”
- 중난산 원사
중국 방역의 상징이자 최고 권위자인 중난산 공정원 원사까지 나서 더 이상 제로 코로나를 고집하면 안 된다 호소하지만 달리는 기차를 세우기에는 너무도 많이 와 버렸다.
그리고 그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면 공산당의 리더십에 균열이 생긴다.
유연하지 못한 중국 공산당에 의해 제로 코로나에서의 방점은 코로나가 아닌 ‘제로’에 찍혀버린 것이다.
영국의 경제학자 토마스 맬서스는 그의 저서 『인구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인류는 필연적으로 멸망한다.”
하지만 인류는 수많은 난관 속에서 산업혁명이라는 것을 일궈냈고 번영했다.
그리고 1789년, 한 치 앞밖에 못 본 무식한 경제학자는 시답잖은 놈으로 남고 말았다.
의지를 지닌 인간에게 위기는 기회이다.
그리고 그 의지는 개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바탕으로 생겨난다.
그것이 인류의 아름다움이고 위대함인 것이다.
영화 어벤저스 시리즈의 『엔드게임』에서 타노스는 한정된 자원의 우주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너무도 많아진 입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타노스는 자신이 믿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벌인, 길고 치열했던 전쟁의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필연적인 존재다. (I am inevitable!)"
하지만 세상에 정해진 운명 따위는 없다.
누군가가 정한 대의를 위해 복종과 희생을 강요당하는 개인이 존재해서도 안 된다.
운명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던 아이언맨이 전체주의자 타노스를 꺾으며 남긴 대답이 “And I am Iron man!"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