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11. 나의 장례식을 상상해 보고 글로 그림을 그려보세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단지 인생을 잘 살아내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넘어, 죽음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로 이어진다. 나 역시 하루하루 삶을 살아가며, 동시에 죽음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자주 실감한다. 그렇다면 나의 마지막 순간, 장례식이라는 이별의 자리를 미리 그려보는 일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근조’라는 말처럼 무겁고, 눈물이 가득하고, 슬픔이 중심이 되는 장면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틀에서 조금 벗어나고 싶다. 내가 여전히 의식이 있고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준비할 수 있을 때, 나를 사랑해 준 사람들과 함께 웃고 울며 내 삶을 따뜻하게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래서 나는 ‘생전 장례식’을 상상해 본다.



유시민 작가의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나오는 생전 장례식 이야기처럼, ‘꼭 내가 없는 자리에서 장례식을 치러야 하나?’라는 질문은 내게 큰 울림을 준다. 살아 있는 동안, 나를 아는 사람들과 내가 걸어온 인생을 함께 돌아보며 작별을 준비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의미 있는 일이 또 있을까?


생전 장례식을 단 한 번의 이벤트로 마무리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을 두고 다양한 모임으로 나누어 진행하고 싶다. 내가 맺어 온 관계에 따라 주제를 달리하여, 자연스럽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를 마주할 수 있도록 말이다.



장례식의 장소는 화려하거나 웅장할 필요가 없다. 내가 살아온 추억이 깃든 우리 집에서 조용하고 평화롭게 열고 싶다. 배경 음악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아이유의 노래들이 잔잔하게 흐르고, 그 소리가 사람들의 대화 위에 포근히 깔리기를 바란다.


가장 먼저 가족들과의 시간을 갖고 싶다. 아내 꽃송이, 아들 은율이와 며느리, 손주들, 동생과 제수씨, 그리고 조카들까지. 이들과 함께 따뜻한 식사를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음식은 특별할 필요 없다. 명절 때 가족이 모여 함께 나눴던 음식들, 엄마가 정성껏 만들어주셨던 채소전, 동그랑땡, 오징어 전, 그리고 소고기 안심구이 정도면 충분하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건강을 위해 허브차를, 젊은 가족들을 위해 커피도 준비해 놓는다. 그리고 거실에 둘러앉아 대화를 시작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나의 부모님, 엄마와 아빠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내 인생의 전환점들 - 결혼, 교사로서의 삶, 은율이의 탄생, 은율이의 결혼, 몸이 아파서 힘들었던 시절까지 - 천천히 하나씩 꺼내어본다.

나에게 영향을 준 신앙과 세계관, 그리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지향해 온 진보주의적 가치관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어쩌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것이 나의 진심이며, 내가 살아온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꽃송이, 은율이, 며느리에게도 함께한 시간에 대한 그들의 소회의 기회를 건넨다. 좋았던 기억, 때로는 속상했던 감정, 그리고 재밌었던 에피소드들. 웃기도 하고, 눈물도 찔끔 흘리는 그런 시간이 되면 좋겠다. 동생 가족들과도 아이들 소식, 건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안부를 살뜰히 챙기고 싶다.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나의 유언을 가족들에게 직접 전하고 싶다. 만약 남아 있는 재산이 있다면 꽃송이에게 우선, 그리고 은율이에게 차례대로 상속하고자 한다. 법적으로 정해진 절차에 따라 상속세를 낸 후, 남은 것으로 거하게 축하 식사를 하고 평화롭게 나누면 좋겠다.


그 후에는 꽃송이와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다. 여태껏 삶의 동반자로 함께 걸어온 소녀 같은 꽃송이와 마지막 추억을 만들며, 고마움과 사랑을 표현하고 싶다. 가능하다면 마지막 생의 기력을 다해 한 번 더 홀로 여행을 떠나, 인생이라는 여정을 스스로 정리하고 돌아오고 싶다.



내가 없는 장례식 자리에는, 내가 미리 말해 두었던 대로 나를 아는 이들이 찾아와 서로를 반가워하며 만나는 장이 된다. 이별의 자리가 단지 슬픔이 아닌, 삶을 나누고 추억을 돌아보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야, 이 형이 말이야….”

“아, 그때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백호가 우리한테 이런 말을 했잖아….”


하고 내 얘기로 웃고 떠드는 그런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그게 내가 꿈꾸는 마지막 풍경이다.


나의 육신은 의학 연구용으로 기증하고, 남은 유골은 화장을 해서 가족들이 기억할 수 있는 곳에 조용히 묻히길 바란다. 내가 살아온 삶이 누군가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 기억될 수 있기를 소망하며.



이 모든 상상은 단지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죽을지를 상상하는 것은 곧,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시 묻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눈을 떠, 밤이 되어 다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어떻게 살까?”라는 다짐으로 하루를 살아가려 한다. 물론 그렇게 살지 못하는 날이 더 많지만, 그 다짐을 놓지 않는 한 나는 여전히 살아 있고,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