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센 벵거, 아스날의 영원한 사랑

by First Touch
KakaoTalk_Photo_2023-12-10-16-05-37 005.jpeg 23/24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노리고 있는 아스날 / 출처 - 아스날 공식 sns



한국 축구 팬들에게 아스날이란 클럽은 익숙하다. 과거 한국 축구 팬들의 새벽을 책임졌던 박지성의 하이라이트에는 항상 아스날이 등장했고, 현재 한국 축구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손흥민의 소속팀인 토트넘과 아스날의 ‘북런던 더비’는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손꼽히는 더비 매치 중 하나이다.


굳이 한국 선수들과 연관이 있지 않더라도, 세계 최고의 리그로 꼽히는 프리미어리그에서 ‘빅 6’라는 별명과 함께 매 시즌 상위권으로 분류되는 만큼, 아스날의 높은 인지도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아스날은 이런 위상과 인지도를 어떻게 갖게 됐을까? 지금의 아스날을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위 궁금증을 풀기 위해선, 한 사람을 알아야 한다. 아스날의 전부이자, 지금의 아스날에 모든 것을 바친 감독, ‘Le Professeur (교수님)' 아르센 벵거다.




Arsene Who?


스크린샷 2023-12-10 오후 3.30.23.png AS 모나코 감독 시절의 벵거 / 출처 - 아스날 공식 홈페이지


아르센 벵거는 1941년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지대인 알자스와 스트라스부르 인근의 듀를렌하임에서 태어났다. 유럽의 여느 남자아이들처럼 자연스럽게 어릴 때부터 축구를 접했던 벵거는 선수로서의 재능은 부족했던 터라 선수 경력의 대부분을 아마추어로 보냈다.


29세의 나이로 처음 프랑스 1부 리그에 모습을 드러낸 벵거는 1978/1979 시즌 스트라스부르 소속으로 리그 1 우승을 차지했지만, 11경기 출전에 그치면서 핵심 멤버로 활약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이는 벵거의 유일한 프로 출전 시즌이 되었다.


평소에 선수보다는 지도자에 관심이 많았던 벵거는 1981년 선수 생활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유소년 지도자부터 시작해 성인팀 코치까지 단계를 밟은 벵거는 1984년, AS 낭시에서 감독로 데뷔했다.


AS 낭시에서 3 시즌을 보낸 벵거는 1987년, 리그 1의 명문, AS 모나코의 감독으로 7 시즌을 보냈다. 부임 첫 해부터 모나코를 리그 우승으로 이끈 벵거는 90/91 시즌에는 리그 컵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93/94 시즌에는 유럽 챔피언스리그 4강에 진출하면서 자신의 주가를 한껏 끌어올렸다.


하지만 1994년, 승부조작 사건이 프랑스를 뒤흔들면서 벵거의 프랑스 생활에도 먹구름이 꼈다. 벵거는 자신의 노력이 부정당했다는 상실감과 자신의 선수들마저 믿지 못하게 된 상황에 절망감에 빠졌고, 모나코와 축구계를 잠시 떠나기로 결정했다.


1년간 칩거 생활을 하던 벵거는 일본으로 향했다. 그는 리그 최하위를 전전하던 나고야를 리그 3위에 올려놓고, 리그 컵 우승을 거머쥐었다. 또한 일본의 식문화에서 영감을 얻어 당시까지만 해도 보편화되지 않았던 식단 관리에 대한 개념을 정립했다. 그야말로 ‘교수님’이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탐구욕과 향상심이었다.




With Aresnal


"Arsene Who?"

- 벵거의 아스날 부임 이후 많은 언론과 팬들이 벵거에게 물음표를 보내며


KakaoTalk_Photo_2023-12-10-16-05-49 008.jpeg 아스날에 부임한 벵거 / 출처 - 아스날 공식 홈페이지


96/97 시즌, 아르센 벵거가 아스날에 부임하자, 모든 사람들은 이 무명의 프랑스인 감독에 대해 의심 어린 눈초리를 보냈다. 호리호리한 몸매와 190cm가 넘는 큰 키, 프랑스인 특유의 고상함을 갖춘 그는 치열하고 전투적인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이질적인 존재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가 아스널의 역사를 만들어나갈 인물이라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Arsene Knows


사실 벵거가 아스널에 부임했을 당시, 아스널의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선수들은 과한 음주와 담배로 몸을 망쳤고, 보드진 또한 방만한 운영으로 클럽을 방치하다시피 했다. 거칠고 보수적인 잉글랜드는 프랑스 교수님에게 맞지 않는 옷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아스널에 부임한 벵거는 빠르게 클럽을 바꿔나갔다. 일본에서 정립한 식단 관리를 통해 선수들의 컨디션을 끌어올렸으며, 그동안 주먹구구식이었던 훈련 방식을 완전히 뒤엎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훈련을 통해 선수들의 신뢰를 얻었다.


스크린샷 2023-12-10 오후 3.36.00.png 아스날에서 연이은 성공을 거두는 벵거. 벵거 뒤로 ‘Arsene Knows’라는 응원 문구가 눈에 띈다 / 출처 - 아스날 공식 홈페이지


프랑스인답게 리그에 ‘혁명’을 일으킨 벵거는 아스널을 빠르게 프리미어리그 정상으로 이끌었다. 부임 첫 시즌인 96/97 시즌 리그 3위에 오른 아스널은 벵거의 지휘 아래 97/98 시즌 리그 우승과 FA 컵을 우승하며 당시 프리미어리그에서 압도적인 위상을 자랑하던 맨유의 가장 큰 대항마로 떠올랐다.


스크린샷 2023-12-10 오후 3.40.05.png 프리미어리그에서 한 번도 지지 않으며 무패 우승을 달성한 아스날과 벵거 / 출처 - 아스날 공식 홈페이지


98/99 시즌부터 3 시즌 간 연속 준우승에 그치던 아스널은 01/02 시즌 다시 한번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거뒀다. 02/03 시즌에도 프리미어리그 준우승과 FA 컵 우승을 거둔 아스널은 03/04 시즌, 무패 우승이라는 역사에 남을 업적을 이뤄낸다.




Highbury my soul, Emirates my suffering


Highbury my soul, Emirates my suffering.

하이버리는 내 영혼이고, 에미레이트는 내 고통이다.

- 아르센 벵거


스크린샷 2023-12-15 오후 2.05.30.png 에미레이트 스타디움 건립에 나선 아스날과 벵거 / 출처 - 아스날 공식 홈페이지


벵거는 단순히 성적만을 좇는 감독이 아니었다. 그는 아스널을 세계적인 명문 클럽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러기 위해선 당시 잉글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구장이던 하이버리를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였다.


결국 아스널은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의 건립을 결정했다. 아스널은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을 위해 외국 자본들이 들어오던 프리미어리그 타 라이벌 클럽들을 상대로 기약 없는 긴축 재정에 들어갔다.


벵거는 훗날 자신의 자서전에서 “급여 예산은 50%가 삭감됐고, 예산이 줄었음에도 부채는 지속적으로 쌓여갔다. 5년 동안 적어도 3번의 유럽 챔피언스리그 진출과 연평균 54000명의 관중이 입장해야 파산하지 않을 수 있었다”라며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쓸 돈은 줄어드는 가운데 성적을 유지해야 했다. 그리고 세상은 아스널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리그 내에서 가장 수익이 좋은 맨유는 여전히 강했다. 석유 재벌 로만 아브라모치의 지원을 받은 첼시 또한 프리미어리그의 신흥 강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아스널은 그들과 같지 못했다. 무패 우승의 주역이었던 앙리와 피레스, 비에이라는 클럽을 떠났다. 그들이 떠나고 나서도 선수 판매는 계속되었다. 파브레가스, 반 페르시, 나스리 등 젊고 유망한 선수들이 차례로 유니폼을 바꿨다. 오직, 벵거만이 홀로 남아 있었다.


KakaoTalk_Photo_2023-12-10-16-05-33 004.jpeg '4스날'이라는 조롱 속에도 묵묵히 아스날을 이끈 벵거 / 출처 - 아스날 공식 홈페이지


벵거는 아스널의 마지막 보루였다. 벵거는 날로 치열해지는 프리미어리그 속에서 아스널을 19년 연속 유럽 챔피언스리그 진출로 이끌었다. 기존의 ‘5년 동안 3번의 유럽 챔피언스리그 진출’이라는 목표를 초과 달성한 쾌거였다.


비록 오랜 기간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는 못했지만, 벵거볼’이라는 아스널 특유의 플레이 스타일로 클럽의 철학을 정립하기도 했다. 팬들에게 ‘4스날’이라는 조롱을 듣기도 했지만, 조롱 섞인 별명은 벵거의 헌신과 노력이 섞인 결과물이었다.


*'4스날'이라는 별명은 아스널이 항상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의 마지노선인 4위를 사수했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아스널과 벵거는 2000년대 중후반부터 프리미어리그 우승에 실패했으나 리그와 별개의 중계료와 상금이 걸려있는 챔피언스리그 진출권만큼은 따내며 분투했다.





GoodBye Arsene


스크린샷 2023-12-10 오후 3.42.05.png 벵거의 피, 땀, 눈물이 섞여 있는 에미레이트 스타디움 / 출처 - 아스날 공식 홈페이지


벵거의 노력 끝에 아스널은 무사히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의 완공을 지켜볼 수 있게 됐다.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은 2023년 10월 스포츠 전문 매체 ‘디 애슬레틱’이 선정한 ‘프리미어리그 클럽 구장 순위’에서 4위를 기록하는 등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손꼽히는 구장이 됐다.


재정적으로도 안정되자 점차 성적도 올라가기 시작했다. 벵거가 은퇴한 17/18 시즌을 끝으로 몇 년간 주춤했던 아스널은 선수 시절 벵거와 함께 했던 미켈 아르테타가 감독을 맡으며 22/23 시즌 리그 준우승을 차지했고, 23/24 시즌 프리미어리그 1위에 오르면서 00년 만의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정조준하고 있다.


KakaoTalk_Photo_2023-12-10-16-05-25 002.jpeg 자신의 동상을 보면서 미소를 짓는 벵거 / 출처 - 아스날 공식 홈페이지


아스널은 23/24 시즌을 앞두고 에미레이트 스타디움 앞에 벵거의 동상을 세우며 그가 아스널에게 안겨준 22년에 감사를 표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침에 일어났을 때,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죠.
'오, 오늘 아스날 봐야지, 오늘도 재미있겠네' 그게 기본적으로 제가 하려 했던 일입니다. 사람들에게 일상에서는 없는 경험을 선사하는 것.

매일의 일상이 다 기쁨은 아니죠. 축구는 사람들의 인생에 특별한 순간을 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타깝게도 항상 그렇게 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희망은 줘야 합니다. 뭔가 특별한 것을 볼 수 있겠다는 희망.

그리고 매일 경험할 수 없는 뭔가를 경험하는 일.

- 아르센 벵거


벵거는 본인의 자서전에서도 밝혔던 것처럼 평생 ‘레드&화이트’의 색을 가진 클럽만을 지도했다. 어쩌면 아스널과 벵거의 만남은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스널 그 자체였던 벵거는 17/18 시즌을 끝으로 아스널을 떠났다. 아스널 부임 초창기, 혁신적인 훈련과 선수 관리를 보이며 프리미어리그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노감독은 역설적으로 급격하게 바뀌는 현대 축구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며 많은 비판을 받았다.


스크린샷 2023-12-10 오후 3.25.52.png 아스날을 떠나는 벵거 / 출처 - 아스날 공식 홈페이지


하지만 벵거에게 후회는 없었다. 영욕의 22년을 뒤로하고 아스널을 떠나면서 벵거는 “아스날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서 팀의 가치를 소중히 지켜주길 바란다. 나의 사랑 아스날, 평생 응원하겠다”라며 끝까지 아스널에 대한 사랑을 밝혔다.


아스널과의 길고 긴 동행을 끝낸 벵거는 축구 행정가로 제2의 커리어를 보내고 있다. 그는 FIFA 이사회에 속해 여전히 축구로 팬들에게 특별한 순간을 선사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사람들이 90분만으로도 '인생은 멋지다'라고 느끼며 귀가할 수가 있다. 이 사실에 나는 긍지를 느끼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프로 축구의 존재의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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