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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챠오 Jan 13. 2024

라두 드라구신, 토트넘의 새로운 보디가드

토트넘이 드디어 새로운 센터백을 영입했다.


2024년 1월 10일, 이적시장의 정통한 파브리지오 로마노 기자는 개인 sns에 자신의 시그니처 문구인 ‘Here We Go’와 함께 라두 드라구신이 토트넘으로 향할 것이라며, 제노아와 토트넘이 드라구신의 이적료로 3000만 유로 (약 433억 원)가 넘을 것이라고 전했다.


드라구신의 영입을 발표한 토트넘 / 출처 - 토트넘 공식 sns


그리고 1월 12일, 토트넘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드라구신의 영입을 발표했다. 3000만 유로의 이적료와 함께 제드 스펜스를 제노아로 임대 보내는 조건이었다. 토트넘은 드라구신에게 7년이라는 장기 계약과 등번호 6번을 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센터백 보강은 토트넘의 가장 시급한 당면 과제였다. 토트넘은 23/24 시즌 전, 미키 판더벤을 영입하며 센터백 보강에 힘썼고, 판 더 벤은 토트넘의 기대에 부응하며 기존의 크리스티안 로메로와 함께 토트넘의 뒷문을 든든하게 지켰다.


하지만 얇은 선수층은 얼마 지나지 않아 큰 문제를 야기했다. 새로운 리그와 환경에 적응할 새도 없이 전 경기에 출장하다시피 한 판 더 벤은 11월, 햄스트링 부상으로 자취를 감췄고, 로메로 또한 퇴장과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두 선수 외에 믿음직한 센터백이 전무했던 토트넘은 결국 본래 풀백 포지션인 에메르송 로얄과 벤 데이비스가 센터백으로 나서는 고육지책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한 때 리그 1위를 달리던 토트넘은 판 더 벤과 로메로 이탈 여파로 5위까지 떨어지는 등 수비 불안에 시달렸다.


그 어느 클럽보다 겨울 이적시장을 간절히 바랐을 토트넘은 이적시장이 열리자마자 드라구신과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나눴고, 바이에른 뮌헨, 나폴리 등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면서 드라구신의 영입에 성공했다.


그렇다면 센터백 보강이 절실했던 토트넘은 왜 드라구신을 선택했을까. 이미 판더벤을 영입하며 자신들의 안목을 증명했던 토트넘은 드라구신에게 무엇을 보았을까.




선수 소개


제노아의 승격을 이끈 라두 드라구신 / 출처 - 드라구신 개인 sns


라두 드라구신은 00년생 루마니아 국적의 센터백이다. 191cm의 당당한 피지컬을 갖추고 있는 드라구신은 배구 선수인 아버지와 농구 선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DNA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뛰어난 잠재력을 보인 드라구신에게 유벤투스, 첼시, PSG 등 유럽 유수의 빅클럽들이 관심을 보였고 2018년, 결국 유벤투스가 경쟁에서 승리하며 16세에 불과하던 그를 영입했다.


큰 꿈을 갖고 뛰어든 이탈리아 무대였지만, 유벤투스의 벽은 높았다. 드라구신의 포지션인 센터백에는 키엘리니와 보누치라는 부동의 듀오가 버티고 있었고, 그 밖에도 더 리흐트와 데미랄 등 쟁쟁한 선수들이 치열하게 주전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18세에 불과하던 드라구신이 그들을 넘기엔 시기상조였다.


20/21 시즌 4경기 출전에 그치며 경기 출전이 절실하던 드라구신은 결국 임대를 택했다. 21/22 시즌 삼프도리아로 임대를 떠난 드라구신은 전반기 13경기 출전에 그치자 곧바로 겨울 이적시장에서 다시 살레르니타나로 임대를 떠나며 경험을 쌓았다.


한 시즌에 팀을 두 번이나 옮기며 성장에 목말라하던 드라구신이었지만, 유벤투스는 그런 드라구신을 기다려줄 만큼 선수층이 얇은 클럽이 아니었다. 유벤투스가 21/22 시즌 세리에 A 베스트 수비수 상을 수상한 브레메르를 영입하려 한다는 루머가 돌자 드라구신은 다시 임대를 결심했고, 22/23 시즌 제노아로 적을 옮기며 출전 기회 확보에 나섰다.


제노아 임대는 드라구신에게 큰 전화위복이 됐다. 세리에 B에 위치하던 제노아는 드라구신과 함께 세리에 B를 평정했다. 드라구신은 리그 기준 38경기 4골을 기록하며 쏠쏠한 득점력과 함께 제노아의 뒷문을 책임졌고, 제노아도 드라구신의 활약에 시즌 도중 그를 완전 영입하며 완전한 신뢰를 보냈다.


제노아와 함께 세리에 A로 돌아온 드라구신은 세리에 A에서도 여전한 경기력으로 빅클럽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그의 지속되는 활약에 센터백 보강이 필요하던 토트넘이 드라구신에게 접근했고, 드라구신은 다시 한번 자신의 커리어를 좌우할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됐다.




선수 장점


유벤투스로 그를 처음 데려왔던 파라티치 전 토트넘 단장이 이번 이적에도 관여 돼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파라티치와 토트넘이 매혹됐던 드라구신의 장점에 대해 알아보자.


적응력


드라구신의 가장 큰 장점은 어린 선수에게 흔히 볼 수 없는 적응력이다. 드라구신은 00년생의 어린 선수이지만, 짧은 커리어와는 별개로 많은 클럽들을 경험했다. 유벤투스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드라구신은 프로 무대에 데뷔한 20/21 시즌 이후 유벤투스, 삼프도리아, 살레르니타나, 제노아 총 4개의 클럽을 경험했다.


점유율을 중시하는 안드레아 피를로 감독 밑에서 프로 데뷔를 했던 드라구신은 삼프도리아에서 경기를 항상 지배하던 유벤투스와는 다른 환경에 살짝 애먹었지만, 다음 클럽이었던 살레르니타나에서 수세에 몰리면서 빠르고 간결하게 플레이하는 법을 익혔다.


21/22 시즌 세리에 A의 팀 스타일 그래프 / 드라구신이 뛰었던 삼프도리아와 살레르니타나의 플레이 스타일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다 / 출처 - 옵타 애널리스트
22/23 시즌 세리에 B의 팀 스타일 그래프 드라구신이 직전 시즌 뛰었던 살레르니타나와 제노아의 플레이 스타일이 완전히 상반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출처 - 옵타 애널리스트


세리에 B의 제노아로 적을 옮겼을 때 드라구신은 또다시 스타일을 바꿔야 했다. 세리에 B에서만큼은 유벤투스와도 같이 점유율 중심의 축구가 가능했던 제노아였기에, 리그 최하위권 팀에 속해있던 드라구신은 한 시즌만에 리그 최상위권 팀에서 플레이하는 법을 익혀야 했다. 그리고 제노아는 세리에 B 우승과 함께 승격을 이뤘고, 드라구신은 리그 전 경기에 출전했다.


제노아가 세리에 A로 승격 후 절대 강자에서 약자의 자리로 내려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드라구신이 있기에 제노아는 승격 첫 시즌임에도 12위에 오르며 안정적으로 세리에 A에 연착륙할 수 있었고, 드라구신 역시 바뀐 팀 스타일에 적응하며 뛰어난 경기력을 보였다.


드라구신의 이러한 경험과 적응력은 까다롭기로 소문난 프리미어리그 적응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어린 선수임에도 다양한 클럽과 상황을 경험한 것은 그에게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안정적인 발 밑


현대 축구는 센터백에게도 준수한 발밑 기술을 요구한다. 뛰어난 센터백들에게 패스 능력과 볼 운반 능력은 더 이상 특별한 장점이 아닌 기본 소양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드라구신 또한 이런 기본 소양을 모두 갖추고 있다.


드라구신은 세리에 B에서 성공적인 패스(1,641회)와 자신의 진영에서의 성공적인 패스(1,213회)에서 리그 3위를 기록하며 라인을 통해 제노아의 후방 빌드업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또한 자신이 플레이한 다양한 오픈 플레이 시퀀스 횟수(1,425개)에서 리그 11위를 기록했다.


또한 드라구신은 수비 지역에서 볼을 운반하는 데에도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 22/23년 세리에 B에서 그보다 더 많은 ‘캐리’(볼을 가지고 최소 5미터 거리를 이동하는 것을 의미함)를 수행한 센터백은 단 두 명뿐이었며, 드라구신의 캐리 중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캐리(208)는 '프로그레시브 캐리'(상대 골문을 향해 경기장 위로 최소 5m 이상 이동하는 것을 의미)였다.


드라구신의 22/23 시즌 세리에 B 기준 프로그래시브 캐리 분포도 / 출처 - 옵타 애널리스트


고무적인 것은 드라구신이 패스(370개)로 끝난 캐리 부문 5위에 올라 공을 앞으로 가져가거나 라인을 무너뜨리거나 압박을 가한 후에도 침착함을 유지하며 동료를 찾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의 침착함은 보다 템포가 빠르고 거친 프리미어리그에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수비력


아무리 발밑이 좋더라도 수비수는 수비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드라구신은 ‘본업’에서도 충실한 모습을 보인다. 제노아와 함께 세리에 A로 돌아온 23/24 시즌, 드라구신은 승격팀 소속임에도 안정적인 수비력으로 제노아를 리그 중위권으로 끌어올렸다.


드라구신은 82회의 클리어런스를 기록하며 세리에 A 기준 2위에 올랐다. 칼리아리의 알베르토 도세나(94개)만이 드라구신 위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이 외에도 23/24 시즌 드라구신은 단 한 번의 드리블만을 허용하는 등 절대적인 수비력을 뽐냈다.


실제 경기 장면으로 보면, 드라구신의 수비력은 더욱 빛을 발한다.


루크먼이 드라구신보다 먼저 스타트를 끊으며 뒷공간에 침투한다 / 출처 - 디 애슬래틱


아데몰라 루크먼이 드라구신의 뒷공간을 노려 침투를 시작하고, 드라구신이 뒤를 쫓아간다.


자신보다 먼저 출발한 루크먼을 따라잡아 태클로 위험 상황을 저지하는 드라구신 / 출처 - 디 애슬래틱


루크먼이 먼저 출발했음에도 드라구신이 루크먼을 따라잡아 깔끔한 태클로 실점 위기를 막아내는 모습이다.


압도적인 공중볼 능력을 가진 드라구신 / 출처 - 드라구신 개인 sns


이 밖에도 드라구신은 헤딩 클리어링(42개)과 공중볼 경합 승리(58개) 부문에서도 리그 3위를 기록하며 공중전에도 강한 모습을 보였다. 69.9%에 달하는 그의 공중볼 경합 승률은 공중전에 다소 약하다고 평가받던 판 더 벤에게도 든든한 수치일 것이다.




기존 선수들과의 궁합


일전에 판 더 벤 글을 다루면서 언급했듯이(https://brunch.co.kr/@07bf8b7490bf4fa/44), 센터백들은 보통 2~3명이 함께 수비 라인을 구축하기 때문에 선수들 간의 궁합이 중요하다. 판 더 벤 역시 다소 도전적인 로메로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궁합을 예상했고, 실제로 토트넘은 두 선수의 찰떡궁합으로 안정된 수비력을 뽐낼 수 있었다.


드라구신 역시 위에서 보았던 것처럼 뛰어난 태클 능력을 가졌지만, 사실 그는 판 더 벤과 같이 태클로 상대의 볼을 빼앗기보다는 스피드와 피지컬을 앞세워 상대와 경합을 하는 상황을 즐기는 유형의 선수이다. 23/24 시즌 드라구신이 기록한 15개의 태클 시도 횟수가 그의 슈팅 (17개) 횟수보다 적다는 점에서도 그의 수비 스타일을 알 수 있다.


23/24 시즌 드라구신의 스카우팅 그래프 / 출처 - 디 애슬래틱


위 차트는 23/24 시즌 드라구신의 플레이 스타일을 나타내는 스카우팅 그래프이다. 높은 수비 임팩트에 비해 현저히 낮은 볼 회복 및 가로채기 부문과 수비 강도는 그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도전적인 수비를 펼치지만,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그가 도전적인 수비보다는 상대를 지연시키고, 공간을 커버하는 유형의 선수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토트넘은 이러한 유형의 선수가 토트넘의 부주장이자 수비진의 핵심인 로메로와 좋은 궁합을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이미 알고 있다. 또다시 판 더 벤이 쓰러지더라도, 이제 토트넘에겐 드라구신이 있다.




토트넘은 긴 부진의 터널을 지나 새 시대를 열어젖히고 있다. 시즌을 앞두고 새로운 감독이 선임됐고, 그동안과는 다른 움직임으로 적재적소에 필요한 영입을 해내고 있다. 드라구신 역시 그 움직임의 일환이다.


토트넘의 새로운 보디가드 드라구신 / 출처 - 드라구신 개인 sns


드라구신은 판 더 벤과 로메로 모두의 백업 역할을 할 수 있으면서, 언젠가는 그들의 자리를 빼앗을 가능성도 지녔다. 토트넘이 로메로, 데얀 쿨루셉스키, 로드리고 벤탄쿠르, 굴리엘모 비카리오 등 그동안 세리에 A에서 성공적인 영입을 이어왔다는 점 또한 그에 대한 기대감을 키운다.


그를 제노아로 데려왔던 전 제노아 감독인 알렉산더 블레신은 드라구신을 두고 “드라구신은 모범적인 선수다. 그는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는 완벽한 마인드를 가진 선수다”라며 그의 성공을 예견하기도 했다.


드라구신은 빅 클럽에서 더 큰 역할을 맡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는 이미 그의 경력에서 보여주었듯이 새로운 환경에서 자신을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지 알고 있는 선수이며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결단력과 열망이 있는 사람이다.


제노아에서 드라구신은 ‘보디가드’라는 별명으로 불리곤 했다. 그는 과연 토트넘의 새로운 ‘보디가드’가 될 수 있을까. 프리미어리그는 가혹하지만 한없이 달콤한 곳이기도 하다. 모든 것은 그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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