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벤 아모림, 레드 데빌즈의 정체성을 정의하다
“챔피언스리그에 나가야만 맨유에 오고 싶어 하는 선수는 필요 없다. 나는 맨유를 대표하고 싶어 하는 선수를 원한다.”
– 루벤 아모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
맨유의 루벤 아모림 감독은 2일 오전 4시 (한국 시간) 스페인 빌바오의 산 마메스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24/25 시즌 유로파 리그 4강 1차전을 앞둔 사전 인터뷰에서 빅토르 요케레스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24/25 시즌 내내 최전방 스트라이커의 결정력 부족에 시달린 맨유였기에 다가오는 여름 이적시장에서 맨유가 스트라이커 영입을 노릴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고, 이에 스포르팅에서 아모림의 지도를 받으며 유럽에서 주목받는 스트라이커로 성장한 요케레스에 대한 질문이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타이밍이 다소 적절하지 못했다.
유로파 리그는 맨유가 24/25 시즌 트로피를 들어 올릴 기회가 남은 유일한 대회였다. 더구나 1차전은 열정적이기로 유명한 빌바오의 홈, 산 마메스에서 펼쳐질 예정이었다. 클럽의 구성원이 전부 단단하게 뭉쳐 이겨내야 하는 시점에서 시즌이 끝난 후에나 일어날 외부 전력에 대한 질문은 다소 성급한 것으로도 보였다.
이를 알았던 걸까. 아모림 감독은 “요케레스와 영입에 대해 이야기 나눈 적은 없다. 하지만 그가 만약 챔피언스 리그에 나가야만 맨유에 오고 싶어 한다면, 맨유는 그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특정 대회에 출전하고 싶어 하는 선수가 아닌, 맨유를 대표하고 싶어 하는 선수를 원한다” 라며 단호하게 입장을 밝혔다.
맨유는 지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긴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알렉스 퍼거슨 경의 은퇴 이후, 반 할도, 조제 무리뉴도, 에릭 텐 하흐도, 맨유의 새로운 정체성을 정립하는데 실패했다.
하지만 이제, 아모림 감독은 맨유의 무너진 정체성을 ‘자부심’으로 되돌리려 한다.
맨유는 한때 가장 확고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던 클럽이었다.
퍼거슨 경 시절의 맨유는 단지 우승하는 팀이 아닌, 사람들을 열광시켰던 팀이었다. 에릭 칸토나, 웨인 루니, 네마냐 비디치, 게리 네빌, 라이언 긱스 같이 그 시대를 상징하는 선수들은 “우리가 맨유다”라는 자긍심으로 어떤 상대와 경기해도 치열하게 싸웠고, 이는 클럽에 대한 자부심이자, 맨유의 정체성 그 자체였다.
그러나 맨유의 찬란한 영광을 이끌던 퍼거슨 경의 은퇴 이후, 맨유는 그 정체성을 점점 잃어갔다. 성적은 점점 떨어졌다. 감독이 교체되고, 전술이 바뀌었지만, 소용없었다. 선수들은 점차 맨유를 기피했고, 일부 선수들이 맨유를 이용해 자신의 몸값을 올린다는 '밈'이 생길 정도로 클럽의 위상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시기 맨유는 이름값이 높은 선수 영입에 몰두했지만, 정작 실속이 없었다. 스타는 많았지만, 리더가 없었다. 선수들이 입은 유니폼은 때로는 붉은 셔츠가 아닌, 그저 높은 연봉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맨유의 정신이 점차 흐릿해지고 있었다.
24/25 시즌 중간에 부임한 아모림 감독은 부임 당시 “우리는 정체성을 확보해야 한다. 캐릭터가 중요하다. 우리가 싸워나갈 방식, 플레이 스타일을 확보해야 하며, 우리 선수들은 셔츠를 입는 순간, 맨유의 일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며 부임 초기부터 클럽의 흐려진 정체성 확립과 자부심에 대해 강조했다.
이어 아모림 감독은 “맨유가 쌓아 올린 업적과 유구한 역사는 클럽에 끊임없는 영감을 가져다준다. 우리는 오랫동안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경험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맨유가 잉글랜드 최고의 클럽이라고 자부한다. 우리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 우승 트로피를 다시 가져와야 한다” 며 클럽이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했다.
그는 선수들에게 명확하게 메시지를 전한다.
“이곳은 명예의 장소다. 너는 그 무게를 견딜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러한 철학은 단순한 동기부여가 아니라, 선수를 구성하는 기준 자체를 바꾼다. 그리고 그 기준은 곧 클럽의 DNA가 된다.
본래 ‘낭만’과 ‘꿈’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스타들이 줄을 서며 입단하고 싶던, 소위 '드림 클럽' 들이 있었다. 맨유 역시 이에 속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클럽의 정체성, 가치는 점점 땅으로 떨어지고, 아무리 화려한 역사를 가진 클럽이더라도 챔피언스리그 진출 여부에 따라 선수들의 눈길이 갈리는 시대가 됐다.
물론 더 큰 무대를 경험하고 싶고, 개인 커리어를 발전시키고 싶은 선수들을 탓할 순 없다. 하지만 아모림 감독은 그런 선수들이 올드트래포드에서 뛰는 것을, 붉은 셔츠를 입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현재 맨유는 프리미어리그 14위에 위치해 있다. 이런 순위 속에서도 클럽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부르짖는 것은 어불성설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아모림은 거꾸로 묻는다.
“우리가 왜 그곳에 나가야 하지?”
그는 그 이유가 클럽의 본질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맨유가 챔스를 가야만 가치 있는 팀이라면, 그건 이미 맨유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는 맨유를 ‘결과를 좇는 클럽’이 아니라, ‘가치를 실현하는 팀’으로 되돌리려 한다. 챔스 진출은 그 결과의 일부일 뿐,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당신은 맨유를 사랑하는가, 아니면 챔피언스리그 출전을 사랑하는가?”
아모림 감독은, 스스로 클럽 철학의 수호자로 정의하고자 한다. 그는 클럽에 그의 전술보다도 맨유의 정체성을 먼저 심으려고 한다.
클럽의 재건은 선수 영입, 프런트 개편, 재정 투자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방향 없는 팀은 우연히 이기더라도, 다음 시즌엔 무너진다. 아모림감독 은 그 방향을 “정체성과 철학”이라는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무기로 되살리려 한다.
물론 아모림 감독은 아직 맨유를 우승으로 이끌지 못했다. 하지만 맨유는 지금 결과보다 더 본질적인 것을 얻고 있다. 바로 방향이다. 이 방향이 분명할 때, 성과는 반드시 따라온다.
맨유는 5월 2일 빌바오와의 유로파리그 1차전에서 3대0으로 대승을 거두며 결승전 진출에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그의 철학 아래에서 맨유는 다시금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질문이야말로, 어떤 전술보다 강력한 재건의 첫 단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