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할머니

동시 필사 35

by 이경아

아홉 살 할머니


김응



하루는 집에 와서

숙제를 하려는데

숙제가 뭐였는지

까먹었지 뭐야!


그래서 그냥 놀았어

온종일 노니까 즐거웠지


또 하루는 엄마가

심부름을 시켰는데

심부름이 뭐였는지

까먹었지 뭐야!


그래서 그냥 안 했어

맘대로 하니까 신이 났지


어느 동짓날 아침

다 함께 팥죽을 먹는데

나이만큼 새알 먹는 걸

까먹있지 뭐야!


그래서 그때부터

나이를 먹지 않았지


일 년이 가고

십 년이 가고

오십 년쯤 흘렀을까

칠십 년쯤 흘렀을까


하루는 잠을 자려는데

저녁을 먹었는지

저녁을 굶었는지

까먹었지 뭐야!


그래서 그냥 자 버렸어

배고픈 줄도 몰랐지


또 하루는 손님이 왔는데

딸인지 며느리인지

옆집 아줌마인지

까먹었지 뭐야!


그랬더니 병원엘 데려가네

의사 선생님이 물었어

할머니 몇 살?
그래서 큰 소리로 말했지

아홉 살!


<똥개가 잘 사는 법>中/창비


이 시의 시적화자는 할머니를 바라보는 9살 어린이가 아니라 9살 할머니다.

그게 이 시의 묘미를 살렸다.


할머니한테도 9살 시절이 있었다. 그때도 잊고 사는 게 많았다. 잊어서 즐거웠고 신이 났다.

어느 날부터 나이 새는 것조차 까먹고 살 만큼 바빴다. 이 시에서는 그 표현을 '나이만큼 새알 먹는 걸 까먹었다'라고 했다.

훌쩍 70년의 세월이 간다.

그리고는 굶었는지 굶지 않았는지. 배고픈지, 딸인지 옆집 아줌마인지

모든 걸 까먹고 의사 앞에서 할머니는 9살 꼬마다.


70년 넘는 인생을 단숨에 써 내려간다.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고 누구나 뻔히 알고 있는 이야기다.

씁쓸한 이야기를 참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는 시다.

읽는 리듬감이 좋다.

그래서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된다.

9살 때도 잊는 게 다반사였잖아. 나이 들어 좀 더 많이 잊는 게 특별하게 슬픈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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