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장례식/김성은

동시 필사 38

by 이경아

말의 장례식


김성은


어느 날 말이 쓰러져 죽자 모두들 안타까워했다.


눈은 '믿기지 않아. 이렇게 갑자기 가다니.'

코는 '아무 때나 튀어 나가지 말라고 그렇게 일렀건만.'

가슴은 '뾰족한 말로 자꾸 찌르다가 벌 받았나 봐.'

입은 '내 잘못이야. 못된 말이 나가기 전에 삼켰어야 했는데.'

귀는 '난 다정하게 속삭이던 것만 기억나서 슬퍼.'

머리는 '그 애에게 고백하려고 준비한 건 어쩌지.'

손은 '나만 바쁘게 생겼네. 앞으론 다 글로 써야 할 거 아냐.'

발은 '누가 왔나 봐. 보험회사에서 무슨 일로........'


"귀하계서 들어 놓은 말보험에서 하루 동안 쓸 수 있는 말을

제공해 드립니다. 계약 내용에 따라 딱 열 마디만 할 수 있으며

어떤 말을 할지는 자유임을 알려 드립니다."


<못된 말 장례식>中/문학동네


말이 죽었다니, 첫 연부터 눈길을 확 사로잡는다.


시적화자는 어느 날 갑자기 벙어리가 되었나 보다.


눈, 코, 가슴, 입, 귀, 머리, 손, 발은 안타까워하고. 그럴 줄 알았다고도 하고, 자책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한다.

이 부분도 참 재미있다. 우리 몸 일부분이 모두 나름의 사연이 있다는 발상이 신선하다. 하지만 예측 가능하다.


하지만 마지막 연의 말보험을 들어 놓았다는 데 무릎을 쳤다.

그것도 하루에 쓸 수 있는 말이 딱 열 마디.

정작 하루에 꼭 필요한 말은 열 마디면 된다는 말이다.

우리가 내뱉는 말의 대부분은 하나마나한 말일 수 있고, 하지 않으면 더 좋은 말일 수 있다는 뜻이다.


나한테 하루에 딱 열 마디만 하고 살라고 한다면, 어떨까?

말을 내뱉기 전에 열 번 스무 번은 더 생각하고 말하지 않을까?

마음속으로 고르고 골라 한 마디 한마디를 하지 않을까?


<못된 말 장례식>中/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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