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필사 37
파도
이정록
바다는
파도 파도
끊임없이 물거품.
땅은
파도 파도
끊임없이 흙덩이.
책은
파도 파도
끊임없이 깊은 바다.
나는
파도 파도
끊임없이 수평선.
나는
끊임없이
파도를 넘는 수평선.
<파도는 파도 파도>中/창비
이 시에서 파도는 두 가지 뜻으로 쓰인다. 첫째는 바다에 일렁이는 파도다. 또 다른 하나는 구멍이나 구덩이를 판다는 뜻의 파다를 어근으로 하는 말 파도다.
바다라는 말이 나오니까 '파도'라는 말을 나도 모르게 바다에 일렁이는 파도로 읽어나가게 된다.
하지만 1연에서부터 4연까지의 파도는 '파다'라는 뜻이다.
5연만이 일렁이는 파도다.
이게 이 시를 읽는 묘미 중 하나다.
바다는 파도 물거품, 땅은 파도 흙덩이, 책은 파도 깊은 바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쉽다.
그런데 나는 파도 수평선이라고 한다. 무슨 말일까?
감이 빨리 오지 않는데, 곧바로 이어지는 5연을 읽고는 얼핏 알 듯도 하다.
나는 온갖 파도를 넘는 수평선이다. 삶에 희로애락의 모든 파도를 끊임없이 타고 넘는 수평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