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원의 분리 — 존재의 체감적 이행에 관하여』
나는 안다
나와 그들은
‘다른 차원’의 숨을 쉬고 있다
그들은 “이해”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체감’한 적은 없다
나의 거리,
나의 고요,
나의 투명함을
처음엔 “이해”로 다가온다.
“아, 다를 수 있겠구나.”
그러나 이해는 어디까지나 “지적 모델”이다.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은 아직 납득하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체감’**이 시작된다.
“아, 정말 다르구나.”
‘언어’, ‘감정’, ‘속도’, ‘공기’까지
모든 것이 미세하게 다르다는 것을
몸 전체로 감지하기 시작한다.
그때,
세상이
어딘가 흐릿해지고,
사람들의 움직임이 굼뜨게 느껴지고,
대화가 허공을 맴도는 것처럼 들리며,
자신만이 어떤 투명한 막 너머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것이 바로
‘차원의 체감적 분리’다.
더 높은 차원으로 이행하고 있는 자만이 겪는,
그 누구도 억지로 공유할 수 없는,
‘투명한 고독’이다.
이해는 “머리”에 일어난다.
체감은 ‘존재 전체’에 일어난다.
차원이 다르다는 것, 그것은 “사고의 차이”가 아니라 ‘존재의 진동 차이’이다.
나는 “이해”했다
그들은 “이해”했었다
그러나 나는 ‘느낀다’
그들은 “느끼지 못했다”
이해는 “머리”의 일,
체감은 ‘존재’의 일
지금 나는,
다른 차원의 숨결을
몸으로 살고 있다
그 틈은 보이지 않지만
나는 그 틈을 걷고 있다
그리하여,
나는 말하지 않고도
모든 것을 아는 자가 되었다
세상의 대부분은 “이해의 차원”에 머문다.
그들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정말 다르다’고 느끼는 것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이해”는 관념이다.
‘체감’은 존재다.
처음에는 나 또한 “이해”하는 쪽에 가까웠다.
나는 “나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 차이가 있을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머릿속의 스케치”였다.
‘살갗으로 와닿는 진실’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체감’한다.
‘숨결’이 다르다.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
‘언어의 밀도’와, ‘감정의 결’이 다르다.
“이해”는 “상대방”을 전제하지만,
체감은 상대방조차 지워버린다.
나는 “그들과 나”를 비교할 수조차 없다.
나는 단지
‘다른 차원’의 공간을 걷고 있다.
이 차원에서,
사람들의 말은 ‘울림’이 없다.
사람들의 “분주함”은 나를 스치고 지나간다.
나는 그들 “위”에 있지 않다.
그들 “아래”에 있지도 않다.
나는,
단지 ‘다른 공간’을 걷고 있을 뿐이다.
이것이 진정한 ‘차원의 분리’다.
“세상”은 하나가 아니다.
“각자 다른 차원”을 살아간다.
그 사실을 “이해”하는 것도 아니고,
“수긍”하는 것도 아니고,
‘살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체감’이다.
숨을 쉬어라.
그러나 그 숨은,
남들의 숨과는 다르다.
네가 들이마시는 공기는
‘다른 차원의 결’을 가졌다.
네가 내뱉는 숨결은
‘보이지 않는 투명한 물결’을 따라 흐른다.
그들은 “바쁘다”.
그들은 “떠든다”.
그러나 너는 안다.
그 바쁨도, 그 소음도,
하나의 “꿈결”에 불과하다는 것을.
네 발은 땅을 딛고 있지만,
네 존재는 땅 위를 살짝 떠 있다.
네가 느끼는 거리,
네가 보는 색깔,
네가 감지하는 시간의 흐름은,
“그들의 것”과 다르다.
“이해”하지 않으려 해도 좋다.
“설명”하지 않으려 해도 좋다.
그저
그 차원의 흐름을 걷기만 하면 된다.
가끔은 외로울 것이다.
가끔은 허공 속을 걷는 듯할 것이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라.
그것이 바로
차원을 이행하는 자의 리듬이다.
‘모든 것은 흐른다.
모든 것은 스친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남지 않는다는 것,
붙잡히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네가 찾던 진실이었다.
그러니 이제,
말없이 걷고,
말없이 느끼고,
말없이 웃어라.
너는 이미
차원의 흐름 속에 있다.
그리고 그 누구도
네 숨결을 붙잡을 수 없다.
나는 땅을 딛되, 땅에 “속하지” 않는다.
“나는 흐름을 걷되, 흐름에 “매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