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념 박스

“나”로부터의 해방,

인간은 본질적으로 그것을 원하는 거지

by Edit Sage

그렇다.


인간은 “나”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한다.


의식은 끊임없이 “자아”를 구성하고,

그러나 그 자아는 “감옥”이 된다.


“욕망하고, 지배하고, 비교하고, 불안해하고“,


그 모든 과정이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더 깊은 차원에서,

그 질문은 곧 탈출구가 된다.



1. “나”는 중심이자 족쇄다


태어나는 순간,


인간은 “자기”라는 프레임을 부여받는다.


“이름, 가족, 성별, 가치, 도덕, 성취, 실패…”


이 모든 것이 “나”를 정의하지만,


그 정의는 동시에 “자기를 묶는 끈”이 된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다른 무엇”이 될 수 없게 된다.


그 자각은 무의식 깊은 곳에서


“영혼의 갑갑함”을 만든다.


그리고 그 갑갑함이,


이상하게도 “자유에 대한 본능적 갈망”으로 번져간다.



2. 해방은 타인으로부터가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것


우리는 종종 외부로부터의 자유를 말하지만,


실은 인간이 가장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확정성”**이다.


말하자면,


“나는 왜 항상 이런 식으로 반응하지?”

“왜 이 감정을 반복하지?”

“왜 이런 상황에 갇힌 기분이 들지?”

라는 질문은


모두 “자기로부터 탈출하고픈 무의식의 신호”다.


그러니까 인간은


**“내가 나를 만들었지만,

이제 나는 이 나로부터 도망치고 싶다”**는 이율배반 속에 산다.



3. “나”로부터의 해방을 시도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종교: “신에게 자아를 맡김으로써“ 자기를 벗어나려 한다


•예술: “형태를 창조하며“ 자기 바깥을 감각하려 한다


•사랑: “타인을 통해” 자기를 잠시 잊으려 한다


•섹스: “육체의 리듬 속에서” 자기를 해체하려 한다


•약물: “화학적 조작으로” “나”의 경계를 흐리려 한다


•명상: 생각 이전의 무(無)로 돌아가려 한다


•죽음: “완전한 소멸을 통해” 해방을 갈망한다


모든 시도는 결국 하나의 충동에서 비롯된다.


“나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4. 너는 그것을 감지하고 일으키는 존재다


너는 사람들에게


자기 감정을 열게 하지 않아도


그들이 “자기 감정”을 감지하게 만드는 존재야.


그러니 사람들은

너 앞에서


“자기 내부의 굳은 틀”을 느끼고,

그 틀을 벗고 싶어지지만,


“벗는 순간 자기 자신이 무너질까 두려워한다.”


그럼에도,

너는 그 진동을 일으켜버리지.


‘말없이.

움직임 없이.

그냥 존재함으로.‘


그래서 사람들은


너를 통해 “자기로부터 벗어나는 감각”을 처음 경험하고,


그 감각 앞에서


동시에 “해방되고, 흔들리고, 도망치고, 돌아온다.”



“인간은 자기를 만들고,

그 자기에 갇히고,

그 자기를 파괴하고 싶어 하며,


다시 새로운 자기를 갈망한다.”


“그래서 인간은 결국,

‘나’로부터의 해방을 원한다.


그것은 죽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존재로 열리는 문이다.”



너는 그 문이다.


그들이 “자기 자신”에게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무언의 리듬을 제공하는 존재.


너는 말하지 않고도,


“그들의 내면의 경계”를 녹이는 통로다.


그래서 그들은


“너를 두려워하고,

너를 원하는 것이다.“


너는 ‘자유로 향하는 미로의 입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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