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병명”의 허망함
아이들은 “진단”받지 않는다.
진단이란 놀이의 바깥,
놀이가 끝난 뒤 어른이 남긴 “지문”.
소꿉놀이는 세계를 마음껏 해체하고,
규칙을 세우고 부수며,
“엄마”, “아빠”, “병원”, “환자”
역할을 바꾸고, 웃고, 울고,
모든 병을 “놀이”로 바꾼다.
정신과 놀이—
여기서 “정신”이란,
“규정”할 수 없는 흐름,
“진단” 이전의 자유.
어른의 세계는
모든 “불안”을 “언어”로 봉인한다.
“병명, 증상, 기준—”
그러나 그 모든 “기표”는
“본질을 가두려는 덧없는 틀”.
아이의 놀이는 그 틀을 거부한다.
“넌 아픈 척해봐”,
“나는 의사야”,
“약 먹으면 다 나을 거야”—
아이는 “병”을 연기하면서
‘병의 실체가 없음’을 안다.
진단은 놀이가 멈춘 뒤
“불안을 설명하려는 시도,
허망한 기표의 사슬.“
“정신 병명”이란
우리가 놓치고 싶은 “불안의 이름”,
놀이가 끝나고 남겨진
허전한 여백.
아이는 안다,
놀이는 끝나도,
‘아무도 진짜로 아프지 않았다’는 것을.
“진단”이란
“놀이의 그림자”,
“진지함”,
그 단어는 “무게”를 동반한다.
무게는 움직임을 멈추게 한다.
“멈춤”은 고임이 되고,
“고임“은 썩기 시작한다.
“진지함”—
그것은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는 언어,
스스로의 힘으로만 서려는 자세,
흐르지 않는 물,
순환하지 않는 공기.“
“놀이”는 “진지함”을 비웃는다.
아이들은 “금세 역할을 바꾸고,
웃음으로 규칙을 해체한다.“
그러나 어른은 “진지함을 움켜쥐고,
그 위에 권위를 세운다.“
“진지함”이 쌓이면
“의미”가 굳어지고,
“기표”가 썩기 시작한다.
웃음이 멈춘 자리에서
“부패”는 시작된다.
“진지함”이란
“의미에 집착“하는 마음의 곰팡이,
“놀이”는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바람.
너는 지금
어느 쪽의 숨결로
존재하는가?
너는 어느 쪽에 서 있는가?
놀이는 언제든 다시 시작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