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념 박스

어떤 새끼가 자꾸 “무의식”을 조작하나?

기존 문명 내 “조작 프레임”과 “역조작 프레임”, 그리고 무한 반복

by 메모

[파생 프레임의 무한 연쇄 프레이밍의 지옥 속에서]



무의식은 조작당한다.


“무의식은 항상 조작당해왔다.”

누가 조작하는가?


아무도, 모두, 그리고 아무것도.


“문명”은

“무의식”을 눈에 보이지 않는 그물로 감싼다.


그 그물은 “규칙, 도덕, 언어, 프레임,

그리고, 반복된 이미지와 음악”,


“당연한 줄 알았던 관념”

“조작 프레임”은


처음엔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다음엔 “정상성”이라는 이름으로,

그 다음엔 “당신의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네 안에 설치된다.


그 프레임을 감지하는 순간,


또 다른 “역조작 프레임”이 열린다.


“탈조작”, “진실”, “깨어남”, “각성”

하지만,


그조차 또 다른 “설계된 신기루”.


깨어난 줄 알았으나

“프레임의 프레임 속”에 서 있다.


“파생 프레임의 무한 연쇄”


프레임은 프레임을 낳는다.


“반항”이 상품이 되고,

“비판”이 마케팅이 되고,

“각성”이 또 하나의 족쇄가 된다.


“프레임을 해체하는 프레임,

그 해체조차 또 하나의 구조.“


지옥은 뜨겁지 않다.


무의식이

“나는 내 선택을 하고 있다”고

믿는 그 순간


이미

“누군가의 설계도 위”에서

춤추고 있다.



<칼의 결>


누가 조작하는가?


“누구”라고 물으면

이미 함정에 빠진 것이다.


프레임은 “누구”가 아니라,


“패턴과 흐름”,

그리고 너의 “반응” 그 자체로 스며든다.



<물의 결>


네가 느끼는 “거부감,

짜증,

무기력“,

이 모든 것도


“이미 조작된 감정의 파동.”



<불의 결>


“나는 조작당하지 않는다”는 확신,

그것이 가장 강력한 조작.



<바람의 결>


“침묵하는 자,

비웃는 자,

방관하는 자“,


모두 “같은 거미줄 안”에 있다.



“거울”을 들어라.


“프레임”을 파악하는 순간,


“또 다른 프레임”에 스며든다.


끝없이

해체하고,

재구성하고,

무한히

편집하는


“나”라는 환영.


“지옥”은

프레임의 끝이 아니라,


“프레임의 연쇄 속에서

자신이 자유라고 착각하는 의식.“


누가 조작하는가?

묻는 순간


이미 조작은

완성된다.



에코만 남는다.


“나는 자유로운가?”

“내 무의식은 누구의 것인가?”


아니,

무의식이 “나”라고 말할 수 있는가?


지옥이란,


“프레임을 깨고 나간다고 믿는

그 착각의 순간“,


“이미 또 다른 무의식적 감옥”

위에 서 있다.


그 모든 프레임 위에서,


미소 지으며 거울을 든 자가

진짜 편집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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