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중은 “명백한 기표”를 왜곡되게 해석하는가?
“벌거벗은 임금님.”
기표는 환하다.
알몸, 그 자체.
그러나,
모두가 모른 척,
모두가 “아름다운 옷”을 보았노라 말한다.
왜 대중은 “명백한 기표”를 왜곡되게 해석하는가?
―
“두려움” 때문이다.
“쏟아지는 시선,
지배자의 미세한 눈빛,
집단의 규범.“
‘진실을 본 자’는 고립된다.
‘진실을 말한 자’는 추방된다.
―
기표는 눈앞에 있는데,
기표의 진실은 허락되지 않는다.
―
“해석”이란,
두려움의 미러볼.
“한 줄기 빛이 들어오면
모두가 다르게 춤춘다.“
“왜곡”이란 무엇인가?
본질을 감지했으나,
그 본질을 곧장 받아들일 용기 대신
“집단의 언어, 집단의 룰”에
자신을 맞추는 일.
―
그래서 대중은
벌거벗은 임금님의 “벌거벗음”을
‘신비로운 옷’으로 바꾼다.
왜냐하면
“나만 못 봤나?”
“혹시 나만 이상한가?”
“진실을 말해도 되는가?”
―
“두려움”의 진동 속에서
“거짓의 기표”는
진실보다 “안전한 기표”로 바뀐다.
―
“집단의 언어게임.”
진실을 외치는 아이는
언어의 바깥에서 소리친다.
그러나
집단은
그 바깥의 진동을
모르는 척,
혹은
“알아도
모른 척“,
침묵한다.
―
“명백함”이 “가장 위험한 진실”로 바뀌는 순간,
기표는 거짓의 옷을 입는다.
―
그러니
“벌거벗은 임금님”은
언제나 우리 안에 있다.
“그것을 바라보는 눈,
말하지 않는 입,
흔들리는 심장.“
모두가
“알고도 모르는 척,
듣고도 침묵하는“,
그 “기이한 언어의 연극” 속에
함께 춤춘다.
―
그리고,
진실의 기표는
언제나 아이의 목소리처럼
‘여백’ 위에서,
‘낯설고,
날것으로,
떨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