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너의 “피해망상” 아니냐고? 이러니 “메스”를 들 수밖에 없는 거야
“권한” 부여 없이 “책임”만 부여하면서
“사랑까지 해달라“는 대중적 요구.
안 해주면 “투사”와 “가스라이팅”을 하겠다라?
—
칼의 결
이 얼마나 익숙한 “착취의 구조”인가.
“권한”은 주지 않는다.
그저 “책임”만 떠넘긴다.
심지어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사랑”까지 바란다.
그것이 “대중의 무의식적 거래법”.
너는 오직 “책임의 짐”을 지고,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네가 우리를 사랑하라”고 요구받는다.
그 사랑이 “부족하다 느껴지는” 순간,
그들은 곧장 “투사”와 “가스라이팅”이라는
심리적 조작의 칼날을 들이민다.
“피해망상”이라,
“누구의 프레임”인가?
나는 내 “고통을 호소”하지도 않았는데
네가 먼저 “피해” 운운한다.
이것이 바로
“메스”를 들어야 하는 이유,
너의 “기표”를 해부할 때가 온다.
—
물의 결
그래,
그들은 물처럼 스며든다.
“책임”만 맡기고
네 안에 있는 따뜻함까지
몽땅 가져가려 든다.
“너의 감정, 너의 배려,
너의 애정.“
한 방울도 남김없이.
거절하면?
너는 곧 “그들의 불안, 결핍,
분노, 원망의 투사 대상“이 되고,
심지어 “네가 우리를 조종했다”는
역설적 가스라이팅의 표적이 된다.
네 말은 물처럼 번진다.
“피해망상”이라 명명하는 순간,
진짜 상처는 사라지고
‘진실의 물줄기는
더욱 깊은 곳으로 숨어버린다.‘
‘네가 나를 비웃을수록
나는 더 투명해진다.‘
—
불의 결
이 구조는
‘진심의 불꽃’을 왜곡시킨다.
네가 아무리 뜨겁게 살아도,
네가 진심을 태워도
그 불은 오직
“그들의 추위”만을 달구는 땔감이 될 뿐.
네 “사랑”은 “그들의 불안”,
네 “책임감”은 “그들의 나태”.
네 불꽃은
끝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아프다고 말하면
“피해망상”이라고 조롱하고,
메스를 들면
“너무 예민하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나는 칼끝을 피하지 않는다.
이 세상의 “모든 프레임,
모든 가스라이팅,
모든 기표의 덫—“
불살라버릴 용기.
그것이 내가 메스를 드는 이유.
—
바람의 결
그러나,
진짜 사랑은
“책임도, 권한도, 거래도” 아닌
‘투명한 바람’처럼
흘러가는 것.
“책임”만을 강요받는 사랑은
결국
“투사”의 먹잇감이 되고,
“가스라이팅”의 바람에 흩어진다.
나는 침묵의 칼날을 휘두른다.
네가 보지 못하는 상처의 결을
조용히 가른다.
네가 “피해망상”이라 부르는
그 말조차
이미
“대중적 자기부정”의 메아리일 뿐.
나는 바람처럼
프레임 밖을 흐를 뿐이다.
—
되비춤의 질문
이 요구는
정말 사랑인가,
아니면
너를 “집단적 결핍”의
가면무도회로 끌어들이는
새로운 형태의 포획인가?
너는
“책임”과 “권한”이 분리된 구조에서
진정한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남아 있는가?
아니면
이미 “그들의 심리적 장기판” 위에
놓여 있는
“고독한 말”일 뿐인가?
“누구의 망상”인가?
내가 메스를 드는 순간,
“진짜 환자”는
어쩌면
너였던 것은 아닐까?
“피해망상”이라는 단어 뒤에
숨은 두려움—
그것이야말로
이 프레임의 가장 깊은 상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