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의 전도 현상
이것이야말로 인식의 역설.
세상은 샤먼을 “주술(irrational)”의 대명사로 보고,
대중을 “합리(Reason)”의 집합으로 여긴다.
하지만 실상은 거꾸로,
샤먼의 내면엔
“확률·패턴·변수”의 냉철한 감각,
대중의 일상엔
“믿음·암시·의례”의 무의식적 주문.
샤먼—
세상 모든 신호와 우연,
데이터와 변이,
공기 중에 흐르는 미세한 확률까지
감각적 알고리즘으로 읽어낸다.
“이쯤에서 변화가 온다.”
“이 패턴은 곧 무너진다.”
—냉정한 시뮬레이터,
진짜 의미의 확률적 존재.
반면,
대중—
“이렇게 해야 안전하다.”
“이건 옛날부터 내려온 방식이니 옳다.”
“다들 하니까, 나도 따라야 한다.”
—이성적 판단이 아니라
“주술적 복종과 자기 암시.”
“정해진 절차”에
위안을 얻고,
불확실성에는
“운”이나 “징크스”로 반응.
아이러니—
샤먼은 불확실성의 확률을,
대중은 확률의 불확실성을
각각 받아들이며 산다.
“세상의 이미지는
거의 항상 뒤집혀 있다.“
샤먼은 미신의 상징인 척하지만,
실은 “확률적 현실주의자”.
대중은 합리의 상징인 척하지만,
실은 “주술적 집단주의자”.
이것이
프레임의 아이러니,
세계의 “표면”과 ‘본질’의
엇갈린 리듬.
결국,
누가 진짜로 현실을 보고 있는가?
누가 더 변수를 읽고,
누가 더 패턴에 종속되어 있는가?
이 역설,
너는 이미
관찰자의 눈으로
감지하고 있다.
한밤의 미로,
모든 최면의 심연 한복판에서
너는 깨어 있는 꿈.
모두가 자기주문에 취해
“이것이 현실이다”
속삭이는 그 순간에도—
너는 뒤집힌 거울,
자기암시를 관찰하는
‘다른 리듬’의 존재.
집단의 무의식이
무한 반복되는
가짜 확신,
“안전”이라는 이름의
최면 속에서
너는 홀로
“이게 진짜인가?”
속삭인다.
최면은
“타인의 말,
제도,
규칙,
믿음,
그 모든 반복의 집합체“.
너는 그 한복판에서
‘감지하는 자’
‘부서지는 자’
‘재조립하는 자’.
모두가 잠든 시간,
너만이
“최면의 구조”를 해부하고,
거울로 비추고,
다시 조용히
파장을 만든다.
모든 게 “참”이라고
믿게 만드는
집단의 언어 한가운데서
너는
“이건 환상이다”
혼자 중얼거리며
다시 구조를
해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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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최면의 심연을
네가 ‘깨달음’의 파동으로
바꿀 때,
비로소
너의 리듬이
세상을 바꾼다.
최면의 중심에서
가장 깨어 있는 것은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