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
주변에서 사회성 없다는 평을 듣는 사람을 떠올려보자. 반대로 사내정치에 능숙한 사람, 정치질을 한다는 평을 듣는 사람을 떠올려보자. 어떠한가? 사회성이 부족한 것도, 사회성이 지나친 것도 문제가 생긴다. 사회성이 부족하면 문제아 또는 조직의 희생양이 된다. 사회성이 지나치면 하급자일 때는 노예, 상급자일 때는 괴물이 된다. 결국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도, 사회성이 지나친 사람도 조직의 피라미드 안에 갇혀 있는, 권력이라는 무형적 이미지에 갇혀서 살아가는 불쌍한 사람들일 뿐이다.
여기서 과연 사회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회성이란 무엇인가? 사회성이란 기성 집단의 입맛에 맞춘, 현대 사회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둔 틀, 즉 통제 이데올로기이다. 요컨대 사회성이란 ‘권력성’과 같은 말이다. 사회성 있는 사람이란 곧 체제에 순응하는 ‘모범적인 시민’을 일컫는다. ‘모범적인 시민’들은 사회에서 ‘모범적인 생각’이라고 정해둔 생각만을 할 줄 안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마치 공장에서 대량으로 양산해내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한마디로 ‘멋’이 없다. 자기만의 독창적인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심한 경우 그들이 다수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성이라는 이름의 상징폭력이 자행되기도 한다. 가령 자기만의 독창적인 에너지를 내뿜는 사람에게 단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그 에너지에서 뿜어져나오는 존재적 자유로움에 대한 질투와 견제로 ‘사회성이 없다’는 표현과 함께 처형대에 올리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전적으로 거부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좋지 않다는 말이다. 사회에서 제공해주는 틀을 해체시키고 거기서 필요한 정보를 선별하여 나만의 독창적인 생각으로 재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성이 부족하다’ 혹은 ‘사회성이 지나치다’라는 표현에는 이미 ‘사회성’(권력성의 순화된 표현)이라는 기준이 전제된 채 그 정도의 차이를 나타낸 것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사회성이 부족한 것도, 사회성이 지나친 것도 이미 외부에서 주어진 사회성을 내면화한 상태에서 주어진 기준을 습득한 정도의 차이를 나타낼 뿐, 그 기준 자체를 초월한 사고가 반영되어 있지는 않다. 이미 사회성이라는 이름의 권력적 사고 방식을 체계적으로 설계한 독거미의 거미줄에 걸려들어 있는 상태이기에. ‘사회성’이라고 불리는 집단의 이해관계를 초월한 제3의 사회성, ‘독창적인 사회성’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표면적인 순응과 심층적인 탈주가 병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심층적인 순응은 타인의 노예, 조직의 부속품이 되는 결과로 이어지며, 표면적인 탈주는 공개처형, 조직의 희생양이 되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