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운명에 갇힐 것인가, 볼 것인가?
“인간은 외부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세계들끼리 싸운다”
인간은
세계를 ‘보지 않는다.’
세계에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입히고
형태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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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만들어진 것들이
“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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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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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그 표상을 “믿는다.”
그리고
그 표상을 위해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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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현실 위에 덧씌운 세계”와
서로 부딪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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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는
자신이 옳다.
틀린 사람은 없다.
그래서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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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잔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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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싸움은
거짓에서 시작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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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과 진심이
충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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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그 위에서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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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구조가
“다른 이름”으로
다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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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기서 하나가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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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인간은
그 표상 속에 “머문다.”
어떤 인간은
그 표상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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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순간
조금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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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은 계속되지만
완전히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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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탈출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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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위치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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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여전히 표상을 만든다.
그러나
그 표상에 전부를 맡기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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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조는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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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 안에서
어디에 설지는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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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와 표상의 루프
인간 안에는
방향 없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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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힘은
스스로를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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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형태를 만든다.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입히고
세계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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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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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인간은
그 표상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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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순간
힘은 방향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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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상은
의지를 “정당화”하고
의지는
표상을 “강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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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서로를 밀어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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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충돌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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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표상과
부딪히고
다른 믿음과
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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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싸움은
거기서 시작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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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그 이전에
힘과 형태가
하나로 묶이는 순간
충돌은
예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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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다른 세계와 싸우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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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만든 세계”에
힘을 실어
그 힘으로
서로를 밀어내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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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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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은 사라지지 않고
표상은 계속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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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구조가
“다른 이름”으로
다시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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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충동 때문에 싸우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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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이
자신을 “옳게 만들 때”
그때
싸움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