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
이 세상의 각종 정보는 레고조각과 같고, 레고설계도는 이 세상에 퍼져있는 각종 이론과 같다. 즉 설계도에 따라 조립한 아름다운 성을 쌓은 각각의 재료는 그저 레고조각일 뿐이다. 레고조각에 대응하는 정보는 감각(외부자극) 또는 관념(내부자극)에 의해 형성된 임시의 이미지에 불과하다. 이미지로 성을 쌓았다한들 그것은 이미지들의 일시적인 결합일 뿐 실체가 아니다.
레고를 조립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레고조립의 목적은 단지 놀이이다. 마찬가지로 정보를 편집하는 목적은 단지 놀이일 뿐이다. 요한 하위징아에 의하면 우리의 본질은 호모루덴스, 즉 놀이하는 인간이다. 그러므로 단지 놀이를 위해 레고설계도에 따라 조립한 것에 불과한 성을 신줏단지 모시듯 하는 것은 바보같은 일이다. 자기 스스로 조립한, 놀이의 결과물에 불과한 성을 교조화하여 믿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특정 설계도에 따라 완성된 조립물은 부숴버리는 것이 목적에 맞은 일이다. 레고조립의 목적은 애당초 놀이였기 때문이다. 조립된 레고조각을 다시 해체하지 않는 한 새로운 놀이는 불가능하기에. 세상에는 놀이를 위해 구성된 설계도가 무수히 많이 있을 뿐더러 놀이를 위한 설계도 자체를 직접 만드는 일도 가능하다. 인간은 이미지로 구성된 세상 밖으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처해 있으며, 이미지에 갇힌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미지를 재료삼아 놀이하는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