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

설계!

by Edit Sage

우리 모두는 자기의 의식상에 펼쳐진 세계만을 보면서 살아간다. 자기의 의식상에 펼쳐진 세계란 무엇인가? 고대 인도 철학자들은 자기의 의식상에 펼쳐진 세계를 마야라고 부르며 허상으로 취급하였다. 자기의 의식이 만들어낸 세계란 그저 외부의 감각 또는 내부의 관념을 재구성한 일종의 이미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자기의 의식상에 펼쳐진 세계란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의 저자 채사장의 탁월한 정리에 의하면 감각 또는 관념의 재구성이다.

감각의 재구성이란 무엇인가? 본다는 것은 외부 자극인 전자기파를 두뇌에서 재구성한 것이다. 듣는다는 것은 외부 자극인 음파를 두뇌에서 재구성한 것이다. 냄새맡는다는 것은 외부 자극인 공기 중의 휘발성 물질을 두뇌에서 재구성한 것이다. 맛본다는 것은 외부 자극인 입 안의 수용성 물질을 두뇌에서 재구성한 것이다. 느낀다는 것은 피부, 심부, 내장 등의 감각수용기를 통한 외부 자극을 두뇌에서 재구성한 것이다.

관념의 재구성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살아오면서 무수한 경험을 하였다. 이러한 경험으로부터 축적된 각종 언어체계가 바로 관념의 정체이다. 불교에서는 경험에 의해 축적되어 패턴화된 언어체계를 업(카르마)이라고 부르며 경계한다(패턴화된 언어체계는 고정관념의 다른 말이기 때문이다). 두뇌는 위와 같은 경험에 의한 내적인 언어체계를 끊임없이 재구성하여 일종의 이미지로 우리의 의식상에 보여준다.

우리는 감각 또는 관념이 재구성된, 우리의 두뇌가 이미지로 치환한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인간은 이미지를 걷어낸 실체세계에 닿을 수 없다. 자기 스스로 만들어낸 주관적 가상세계에서만 살아갈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의 세계는 필연적으로 주관적이며 독립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나의 의식이 남의 감각 또는 관념을 재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석가모니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이기심의 표현이 아니라 자기의 의식상에 펼쳐진 모든 세계는 결국 자기만이 만들어낼 수밖에 없음을 인지한 표현이다. 하늘 위 하늘 아래에서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는 것은 자기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것은 오직 ‘나’밖에 없기 때문에 가능한 말이며, 의식상에 비쳐지는 ‘타자의 형상’ 역시 ‘나’이기에. 그러므로 ‘나’를 지극히 존귀하게 대하는 사람은 ‘타자의 형상’뿐만 아니라 ‘세상 만물의 형상’ 역시 지극히 존귀하게 여기게 마련이다.

인간은 자기의 의식 내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인간은 무한한 자유가 주어져 있는 동시에 무한한 책임 또한 주어져 있는 고독한 존재인 것이다. 세상이라는 텅 빈 광야에서 오로지 홀로만 존재하는 인간은 자기의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초연하게 걸어가야 한다. 자기의 필연적인 운명을 받아들이지 못해 외로움에 사로잡혀 인생을 낭비하는 태도는 지극히 수동적이다. 인간은 각종 사회적•문화적 제도가 제공해주는 아편을 결단코 거부하고, 필연적으로 펼쳐지는 자기의 운명을 직시해야 할 것이며, 자기의 운명을 기꺼이 수용한 채 주체적으로 걸어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인간이 자기의 인생에 대해 최선의 경의를 표할 수 있는 능동적인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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