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
당신이 ‘좋아하는 일’이 당신이 ‘잘하는 일’이라면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자아실현과 생계유지의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가능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설령 위대한 일이라고 치더라도 당신이 ‘좋아하는 일’이 생계유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당신은 우선 생계유지수단부터 확보해야 할 것이다. 되도록 당신이 ‘잘하는 일’을 도구로 삼아. 생계유지가 바탕이 되지 않는 자아실현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다. 생계유지가 바탕이 되지 않는 자아실현의 말로는 비극적이다. 그의 자아실현은 실상 기만이며 허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자아실현은 그 활동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자기목적적 특성을 갖는다. 그런데 생계유지가 되지 않는 상태에서의 자아실현은 어떤 모습을 띠겠는가? 그 활동 자체를 목적으로 하여야 할 자아실현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함으로써 그 순수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철학자가 자기의 철학을 상품패키지로 구성하여 물물교환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과 같다. 고귀하고 고결한 정신을 담고 있어야 할 그의 철학은 그저 기만에 불과했으며, 고결한 정신을 지니고 있다고 여겨졌던 철학자는 돈벌이에 혈안이 된 장사치로 변모한다. 그러므로 자아실현이라는 고귀한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우선 최소한의 생계유지라는 전제가 깔려 있어야 한다. 당신의 자아실현이 생계유지에 굴복하여 ‘아이’의 정신에서 ‘낙타’의 삶으로 전락하지 않고자 한다면(니체에 따르면 자아실현에 목적을 둔 사람의 정신은 낙타-사자-아이 순으로 발전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