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
일상적 체험에서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구체적인 느낌을 온전히 표현하기에는 언어라는 추상화도구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제아무리 정교한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미묘한 느낌의 절반조차 표현하지 못한다. 오히려 언어는 직감을 온전히 느끼는 데 있어 그것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선불교에서 불립문자(不立文字)를 주장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제아무리 정교한 언어(말이나 글 또는 생각)를 사용하더라도 실생활의 생생한 느낌을 온전히 표현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 이전의 번뜩이는 직감, 그것을 생생하게 표현해낼 방법이 없는 것이다. 직관적인 느낌을 생각으로 구현하는 순간 그 느낌은 1차적으로 왜곡되고, 생각을 다시 문자로 구현하는 순간 2차 왜곡이 발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