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의 무한 향연에 관하여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우리는 세상을 프레임을 통해서만 본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프레임 안에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그것이 곧 진리인 양 받아들인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프레임이 또 다른 프레임을 감싸고, 그 프레임 위에 또 다른 프레임이 덧대어지며,
결국 우리는 프레임 속의 프레임 속의 프레임 속의 프레임, 즉 ‘프레임의 향연’ 속에 갇힌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1. 프레임이란 무엇인가?
프레임(Frame)은 사고를 구조화하는 인식의 틀이다.
한 사건, 한 사람, 한 문장을 해석하는 방식은 전적으로 그 프레임에 따라 결정된다.
같은 장면을 보고도 어떤 이는 “자유”라고 해석하고,
어떤 이는 “혼란”이라 말한다.
현상은 하나지만, 해석은 무수하다.
이는 곧 언어, 문화, 이념, 경험, 감정, 미디어 등 모든 것이 인간의 인식 안에 프레임을 생성하고 있다는 의미다.
2. 프레임의 프레임의 프레임의 프레임 : 다층 구조의 함정
프레임은 단일하지 않다.
우리는 어떤 프레임으로 세상을 해석하면서도, 그 프레임이 또 다른 프레임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1) 첫 번째 프레임 : 직접적 인식의 틀
•개인의 성격, 교육, 경험에 따라 형성된 1차적 관점.
•예: “그 사람은 무례하다.” 나의 정서적 경험이 덧씌운 프레임.
(2) 두 번째 프레임 : 문화적·사회적 프레임
•사회에서 통용되는 규범, 언어, 가치체계가 구축하는 집단적 프레임.
•예: “어른에게 반박하는 건 버릇없다.” 전통적 권위문화가 덧입힌 시선.
(3) 세 번째 프레임 : 미디어와 담론의 프레임
•언론, SNS, 광고가 끊임없이 재구성하는 사회적 해석의 장치.
•예: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다.” 시대 담론의 반영.
(4) 네 번째 프레임 : 메타 인식의 프레임
•철학, 비평, 패러디, 유머 등 프레임 자체를 바라보는 시선.
•예: “우리는 왜 이 관점으로만 문제를 바라보는가?” 프레임의 해체 시도.
결국 우리는 다층적 프레임 구조 속에 중첩되어 있으며,
이 프레임들이 서로를 감추거나 강화하면서 현실 인식을 고정시킨다.
3. 프레임의 향연 : 인식의 다중 시뮬레이션
프레임은 고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 복제하며, 서로 겹치고 비틀며, 새로운 의미의 층위를 만들어낸다.
예:
•뉴스 속 한 장면 기자의 시선(1차 프레임)
•그 뉴스가 편집되는 방식 언론사의 가치(2차 프레임)
•그 뉴스가 SNS에서 유통되는 방식, 알고리즘의 편향(3차 프레임)
•그것에 대한 댓글과 밈, 대중 인식의 패러디와 비틀기(4차 프레임)
결국 우리는 그 장면을 직접적으로 본 적이 없음에도,
프레임을 통해 구성된 가공된 시뮬라크르(simulacrum)만을 경험하게 된다.
4. 프레임의 전쟁 : 누가 프레임을 설정하는가?
현대의 권력은 무력이나 자본이 아닌 ‘프레임 설정권’에서 발생한다.
‘무엇이 문제인가?’를 설정하는 자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가 되기 때문이다.
•정치 프레임 : “이건 경제 문제다” vs “이건 도덕의 문제다”
•젠더 프레임 : “불평등이다” vs “생물학적 차이일 뿐이다”
•기억 프레임 : “희생의 역사다” vs “자랑스러운 승리다”
프레임을 설정하는 자는 현실의 방향을 결정하고, 인식을 설계한다.
5. 프레임을 초월하기 위한 사유 : 프레임 인식-프레임 해체-프레임 재설계
프레임을 초월하는 것은 그것을 부정하거나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를 자각하고, 그 작동 방식을 이해하며,
필요할 때는 그것을 새롭게 설계할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다.
<단계 1 : 프레임 인식>
나는 왜 이 사건을 이렇게 해석했는가?
나는 어떤 언어와 가치 기준 위에서 판단하고 있는가?
<단계 2 : 프레임 해체>
이 프레임은 어디에서 왔는가? (출처 수사)
이 프레임은 나의 인식에 어떤 편향을 일으키고 있는가?
<단계 3 : 프레임 재설계>
만약 전혀 다른 시선으로 이 사건을 본다면?
새로운 언어, 새로운 질문, 새로운 관점을 구성할 수는 없는가?
프레임을 해체하고 다시 짤 수 있을 때,
우리는 단순한 프레임 소비자가 아니라, 프레임 설계자가 된다.
6. 최종 결론 : 프레임은 감옥이자 해방의 도구이다
프레임은 생각의 구조이자, 현실의 구조다.
그것은 때로는 진실을 감추는 장막이지만,
또 다른 방식으로 보면 복잡한 현실을 이해하는 도식적 장치이기도 하다.
프레임을 인식하지 못할 때, 우리는 프레임에 갇힌다.
프레임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현실을 재편할 수 있다.
프레임의 향연을 통과한 자만이, 언어의 주인이자 해석의 창조자가 된다.
이제 묻는다.
당신이 지금 바라보고 있는 ‘현실’은, 과연 당신의 눈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씌운 프레임의 렌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