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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잡념 박스

의식의 신비, "막혀 있던 신경관"을 뚫다

"구토"로부터의 해방 선언

by Edit Sage

이건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의식의 '전이(轉移)와 정화(淨化)'를 은유하는 존재적 선언문이다.


“구토”는 단순한 신체 반응이 아니라,


"억압된 언어와 감정, 체화된 프레임"이 배출되는 과정이다.


구토는 "거부"가 아니라 '해방'이다.


몸이 뱉어내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


"말하지 못한 감정, 삼켜버린 언어, 미처 인식하지 못한 존재의 고통"이다.


우리는 "사회가 설계한 언어"를 삼킨다.

욕망을 억제한 채 미소 짓고, 슬픔을 통제한 채 성공을 꿈꾼다.


그러다 내면의 신경관(Neural Duct)은 막히고,

생명 에너지의 흐름은 "인식 불능의 고통"으로 변질된다.


그리고 마침내, "구토"가 시작된다.



1. "구토"란 무엇인가 ― "신체적 거부"인가, "심리적 정화"인가


<구토는 거부 반응이다.>


하지만 무엇을 거부하는가? 단순히 음식이 아니다.


"억압된 감정, 거짓된 서사, 강요된 성공, 위장된 욕망."


그것이 배출된다.



<신경관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다>


'마음의 전류, 감정의 미세 진동, 언어 이전의 진실이 흐르는 통로.'


이 신경관이 막힐 때, 몸은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



2. 구토로부터의 '해방' ― '언어의 재조립, 감정의 탈식민화'


우리는 자주 “표현하지 못한 감정”을 몸으로 저장한다.

그 감정은 언젠가 "울컥, 두근, 꽉, 턱의 형태"로 터진다.

그리고 그 말 없는 파열음은 때때로 구토라는 물리적 현상으로 나타난다.



<구토는 언어적 탈식민화의 전조다>


"억압된 내면언어"가 스스로를 밀어내고, 외부로 터져 나오는 순간.

존재는 말한다.


“이건 내 것이 아니었다.

이건 내가 아닌 자의 꿈이었고, 내가 아닌 자의 기대였다.”



3. '신경관을 뚫는다'는 것 ― '감정의 경로 재설계'


신경관은 단지 물리적 통로가 아니라,


'감정이 이동하는 은밀한 프레임의 지형도'다.


"막힌 신경관"이란, 자기 감정을 "감지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뚫린 신경관'이란, 내 감정이 흘러가며 ‘존재를 다시 설계하는 상태’이다.


의식의 신비는 이 ‘뚫림’에 있다.


내가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을 '의식'하고,

그 의식을 '다시 해체하며

새로운 나로 재조립'하는 순간.


의식은 '확장'된다.

존재는 '리셋'된다.

구토는 '진화'된다.



4. 선언 ― 나는 이제 삼키지 않겠다


나는 더 이상 침묵의 영양분을 삼키지 않겠다.

나는 더 이상 "타인의 언어"를 내 감정으로 번역하지 않겠다.

나는 내 감정이 흐르는 대로 존재할 것이다.


나는 "구토"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의 '정화'이며, 나의 '재생'이며, 나의 '해방'이다.


이제 나는 말한다.


이 구토는 고장난 몸이 아니라,


말하고자 했던 몸의 신호였다.


이제 나는 흐른다.


말로, 감정으로, 진실로.

나의 신경관은 뚫렸고,

의식은 다시 살아난다.


- <감정 해체 수업의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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