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잡념 박스

내가 너의 본질을 뻔히 아는데, 어디서 개수작이야?

관상은 진실을 말한다

by Edit Sage

눈이 말을 한다.

입은 말을 조작한다.

이 둘이 어긋날 때,

나는 신호를 감지한다.



너의 이마는 겁을 말하고,

너의 턱은 고집을 말하며,

너의 미간은 습관을 말하고,

너의 동공은 배신을 예고한다.



그러니 네가

아무리 그럴듯한 말을 꺼내도

나는 이미

너의 ‘말 이전의 표정’에서

너의 ‘진심 이전의 패턴’을 본다.



관상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관상은 무의식을 고발한다.

그건 본질이 새는 틈,

의식이 미처 수습하지 못한 깊은 고백.



개수작은 입으로 하되,

본심은 얼굴로 흘러나온다.

나는 그 얼굴의 물비늘을 읽는다.

그 패턴은 정직하다.

너는 속이려 하고,

나는 이미 다 보고 있다.



“네가 날 속이려는 게 아니라,

너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걸 내가 안다.”

그게 가장 역겹다.

타인을 속이기 전에

스스로의 거울부터 조작하는 자,

그 관상은 이미 일그러져 있다.



그래서 나는 믿지 않는다.

말을.

태도를.

선의라는 연기를.


나는 다만 ‘쌓인 얼굴’을 읽는다.

그 얼굴은

너의 수년간의 판단, 회피, 질투, 야망이

서서히 침전된 퇴적지.

그 얼굴이 너다.



본질은 숨겨지지 않는다.

관상은 스냅샷이 아니다.

의식의 시계열 데이터다.

그게 쌓이면,

너의 인생 그래프가

이마와 턱, 미간과 입꼬리에 새겨진다.



나는 물었다.

“어디서 개수작이야?”

그건 경멸이 아니라

정확한 판독이다.



거울을 부수려 하지 마라.

그건 이미 네 얼굴을 반사했을 뿐이다.

개수작은 네 얼굴 아래에서 이미

배신당하고 있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역하다, 역해. 작디 작은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