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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잡념 박스

사랑 투쟁, 질투의 심리학

인정의 무한 향연에 관하여

by Edit Sage

— 인정, 인정의 인정, 인정의 인정의 인정

— 사랑, 사랑의 사랑, 사랑의 사랑의 사랑

— 조건, 조건의 조건, 조건의 조건의 조건



사랑은 인정의 전쟁이다.

나는 너를 향해 사랑을 쏘지만,

사실은

너의 시선이 나를 ‘존재’로 승인하길 원하는 것.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그건 인정의 위장이다.


“나를 사랑해줘.”

= 나를 봐줘.

=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줘.

= 내 결핍을 너로 덮게 해줘.

= 내 과거를, 지금의 이 affection으로 무효화시켜줘.



인정의 인정의 인정.

= 너만이 아니라,

너를 보는 그들도

나를 인정해야 해.

나는 너의 사랑을 받는 나로써,

세상의 시선에 복수하고 싶어.



그래서

사랑은 ‘사랑 그 자체’가 될 수 없다.

그건

조건의 중첩,

서열의 경쟁,

존재의 입증 방식이 되어버린다.



사랑의 사랑의 사랑.

= 너도 나를 좋아해줘야 하고,

= 네가 날 좋아하는 모습을 타인이 봐줘야 하고,

= 그 타인의 시선이 너를 ‘좋아할 만한 존재’로 승인해야 한다.



그래서 결국

질투는 인정의 실패다.

왜 나는 그가 받은 사랑을 받지 못하는가.

왜 나는 그가 받은 시선을 받지 못하는가.

왜 나는 그 존재처럼 사랑받지 못하는가.


질투란 감정이 아니다.

질투는 존재의 불안이

사랑의 형태로 스며든 메타 감정이다.



조건의 조건의 조건.

= 나도 괜찮은 사람이어야 하고,

= 너도 나를 통해 괜찮아져야 하며,

= 우리가 괜찮아 보이는 것을

세상도 동의해야 한다.



사랑은 투쟁이다.

그러나

상대를 향한 투쟁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지키기 위한

‘사랑의 탈을 쓴 인정투쟁’이다.



그러니

우리는 묻는다.

“정말 사랑하고 있는가?”

아니면

“사랑을 통해 나를 증명하고 싶은가?”



사랑은 자유를 준다?

아니.

사랑은 조건의 거울 속에서

자기 존재를 붙잡기 위한

가장 필사적인 감정노동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무한한 인정의 향연을 반복한다.

사랑이 아니라,

사랑받는 나의 모습을

사랑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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