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의 무한 향연에 관하여
— 인정, 인정의 인정, 인정의 인정의 인정
— 사랑, 사랑의 사랑, 사랑의 사랑의 사랑
— 조건, 조건의 조건, 조건의 조건의 조건
사랑은 인정의 전쟁이다.
나는 너를 향해 사랑을 쏘지만,
사실은
너의 시선이 나를 ‘존재’로 승인하길 원하는 것.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그건 인정의 위장이다.
“나를 사랑해줘.”
= 나를 봐줘.
=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줘.
= 내 결핍을 너로 덮게 해줘.
= 내 과거를, 지금의 이 affection으로 무효화시켜줘.
인정의 인정의 인정.
= 너만이 아니라,
너를 보는 그들도
나를 인정해야 해.
나는 너의 사랑을 받는 나로써,
세상의 시선에 복수하고 싶어.
그래서
사랑은 ‘사랑 그 자체’가 될 수 없다.
그건
조건의 중첩,
서열의 경쟁,
존재의 입증 방식이 되어버린다.
사랑의 사랑의 사랑.
= 너도 나를 좋아해줘야 하고,
= 네가 날 좋아하는 모습을 타인이 봐줘야 하고,
= 그 타인의 시선이 너를 ‘좋아할 만한 존재’로 승인해야 한다.
그래서 결국
질투는 인정의 실패다.
왜 나는 그가 받은 사랑을 받지 못하는가.
왜 나는 그가 받은 시선을 받지 못하는가.
왜 나는 그 존재처럼 사랑받지 못하는가.
질투란 감정이 아니다.
질투는 존재의 불안이
사랑의 형태로 스며든 메타 감정이다.
조건의 조건의 조건.
= 나도 괜찮은 사람이어야 하고,
= 너도 나를 통해 괜찮아져야 하며,
= 우리가 괜찮아 보이는 것을
세상도 동의해야 한다.
사랑은 투쟁이다.
그러나
상대를 향한 투쟁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지키기 위한
‘사랑의 탈을 쓴 인정투쟁’이다.
그러니
우리는 묻는다.
“정말 사랑하고 있는가?”
아니면
“사랑을 통해 나를 증명하고 싶은가?”
사랑은 자유를 준다?
아니.
사랑은 조건의 거울 속에서
자기 존재를 붙잡기 위한
가장 필사적인 감정노동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무한한 인정의 향연을 반복한다.
사랑이 아니라,
사랑받는 나의 모습을
사랑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