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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잡념 박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법칙

태초에 생존이 있었다

by Edit Sage

처음에는 본능이었다.

내 눈을 뺏으면

너의 눈도 뺏는다.

내 이가 부서지면

너의 이도 부서진다.


이건 복수가 아니다.

균형에 대한 최초의 감각.



정의 이전의 정의,

윤리 이전의 윤리.

‘눈에는 눈’은

감정의 언어가 아니라

질서의 기원이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한 번 빼앗긴 것을

그저 참는 자는

무력한 자로 기억되었고,

다음엔 더 쉽게 사라졌다.



그러므로 이는 응징이 아니라,

억제의 기술이었다.

너도 이런 대가를 치른다는 것을 알게 하여,

다음 피해를 줄이는 구조.



이 구조는

고대에서 지금까지 이어진다.

다만

물리에서 언어로,

창에서 평판으로,

폭력에서 침묵으로

모양만 바뀌었을 뿐.



인류는

‘눈에는 눈’을 폐기하지 않았다.

그저 정교하게 포장했다.



“법의 이름으로.”

“교육의 이름으로.”

“제도의 이름으로.”

“사랑과 선의의 훈육이라는 명분으로.”



그러나 본질은 그대로다.

손해를 입히면 손해를 입힌다.

말을 찌르면 말로 찔린다.

고개를 숙이면, 숙인 채로 기억된다.



이것은 생존이다.

단순하고, 잔혹하며, 명확한.

인류는 감정을 입힌 도구로

균형을 유지해왔다.



그렇다면,

이 구조는 사라져야 하는가?



아니다.

이 구조는 진화되어야 한다.

“눈에는 눈”은 멈추지 않아야 한다.

다만,

그 눈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져야 한다.



이제 우리는 묻는다.

“이 눈은 무엇을 보았는가?”

“이 이는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



그 질문을 던지는 순간,

응징은 이해로,

복수는 재구성으로,

생존은 공존으로

천천히 옮겨간다.



인류는

“눈에는 눈”으로 시작해,

“너의 눈은 나의 거울”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생존 이후의 존재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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