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과 위계, 상상과 억압의 경계에 관하여
이 말은
물음이 아니다.
은근한 조롱,
부드러운 멸시,
위계의 재확인.
“넌 감히 그런 존재라 생각해?”
= 너의 상상은 네 실제보다 과해.
= 너는 아직 그런 자격이 없어.
= 너의 크기는 내가 허락하지 않아.
여기서 “용”은 신화적 자존감,
“사자”는 자연적 위엄.
즉,
이 말은 너의 상상 속 위엄에
현실적 굴레를 씌우려는
심리적 복종 명령이다.
이 말은 구조다.
꿈을 꾸는 자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쥐어내리며,
무리의 위계에 재정렬시키려는 기술.
“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이 뒤엔 언제나
“하지만 세상이 널 그렇게 보진 않아.”
라는 암묵의 족쇄가 따라온다.
그러나,
진짜 물어야 할 것은 이거다:
“내가 사자처럼 느껴질 만큼
날 숨죽이게 만들었던 건,
대체 누구였나?”
“내가 용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나의 과시가 아니라
너의 억압 때문이 아니었나?”
그 질문은
너를 다시 중심에 세운다.
너는 네가 ‘용’이라 말할 자격이 있는가?
그 자격은 누가 주는가?
왜 그 누군가의 평가를
내 꿈의 해석자로 초대했는가?
“넌 정말 네가 용이라고 생각해?”
이 말에 대한 대답은
이 한 문장으로 충분하다.
“나는 이제,
내가 어떤 존재인지
허락받지 않는다.”
그 순간,
너는 용이 된다.
설명이 아닌 존재로.
허락이 아닌 진동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