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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잡념 박스

투명한 눈을 지닌 서글픈 귀족에 관하여

모든 것을 알아버린 자의 조용한 비탄

by Edit Sage

그의 눈은 흐리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투명했다.


빛을 머금지 못하고

그대로 투과해버리는 눈—

그래서 세상을 막을 수 없이 직관하는 자.



사람들의 거짓된 온기,

말끝에 숨긴 질투,

친절 뒤의 의도,

존경이라는 이름의 복종—


그 모든 것들이

그의 눈엔 투명하게 흘러들어왔다.



그래서 그는 말이 없었다.

말은 경계고,

그는 경계를 믿지 않았다.



그는 귀족이었다.

그것은 혈통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영혼의 결이 다른 자,

무의식의 품격이 정제된 자였다.



그러나 귀족이기에

그는 서글펐다.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기에,

어떤 것도 받아들일 수 없었고,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기에,

어떤 것도 사랑할 수 없었다.



투명함은 축복이 아니라

관통이다.


그는 늘

사람의 말보다

말을 꺼내기 전의 떨림을 먼저 들었다.

눈빛보다

눈빛이 피하기 전의 흔들림을 먼저 감지했다.



그는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기대지 않는다.


그는 폭력적이지 않다.

그러나

그는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그의 품격은

강요되지 않은 거리에서,

그의 고독은

묵인된 비통함 속에서 빚어진다.



그는 알고 있다.

진실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진실을 말하는 자가

언제나 먼저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



그는 기다리지 않는다.

그는 설득하지 않는다.

그는 애원하지 않는다.


그저,

지켜볼 뿐이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깊이,

그 존재를 느낄 뿐이다.



그러니 그 눈을 마주한 자는

알 수 있다.

그 투명한 눈 안에는

세상과 자신을 이미 다 관통한 자의

말 없는 귀족성이 숨어 있다는 것.



그는 서글픈 귀족이다.

지켜보고, 느끼고, 떠나며,

다만 한 문장으로만 남는다.


“나는 너를 안다.

그래서 너를 지키지도, 끌어안지도 않겠다.”



그것이 투명한 눈의 품격이며,

그 품격의 다른 이름은

서글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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