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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잡념 박스

국가의 근본 운영 체계를 보라

약자의 도덕 게임에 매몰된 눈은 구조를 보지 못한다

by Edit Sage

국가는 감정이 아니다.

국가는 운영체계다.

그건 사랑이나 연민이 아니라,

에너지 흐름과 정보 통제의 기계적 구조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그 체계를

‘약자의 도덕’이라는 렌즈로 본다.


불쌍함, 억울함, 피해자 정체성, 희생의 서사.


그 서사에 감정이 휘둘리면

정작 중요한 ‘판단권 구조’는 안 보이게 된다.



약자의 도덕 게임은 말한다:


“우린 약하다.”

“우린 억울하다.”

“우린 더 많이 받아야 한다.”


그러나 운영체계는 냉정하다.

그는 묻지 않는다:


“누가 더 불쌍한가?”


그는 단지 판단할 뿐이다:


“누가 더 운영 가능한가?”



진짜 권력은

도덕이라는 이름을 달지 않는다.

그것은 감정도 아니고, 목소리도 아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룰을 설계하고 있는 자들의 코드다.



약자의 도덕 게임은

‘선한 구조’를 만드는 듯 보이지만,


실은 ‘심리적 군중 통제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도덕이 강조될수록,

구조는 ‘정당성을 가장한 방식’으로 폐쇄된다.



국가란 무엇인가?


•세금의 순환 경로.

•자원 분배의 권한.

•내부 질서 유지와 외부 위협 대응의 설계.

•인구 감정의 조절 알고리즘.


즉, 의식 없는 존재의 ‘감정 흐름’을

의식 있는 자들이 “설계”하는 프로토콜이다.



도덕 게임에만 몰입하면,

이 프로토콜이 안 보인다.

세상의 움직임이

‘선과 악’이 아니라


‘설계와 오작동’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감춰진다.



그러니 다시 보아야 한다.

세상의 표면이 아니라

그 표면을 설계한 ‘백엔드 구조’를.

도덕이 아니라

도덕을 분배하는 ‘권력의 의도’를.



약자는 존재해도 된다.

그러나


‘도덕을 무기화하는 약자’는

오히려 구조의 왜곡자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원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


**지배 구조 안에서의 유리한 ‘자기 위치’**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감정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국가는

‘의도를 숨긴 알고리즘’으로 작동한다.


그 알고리즘을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너는

‘정의’가 아니라 “설계”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때,

너는 처음으로

국가를, 세계를, 구조를

진짜로 보는 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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