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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잡념 박스

나는 돌부처의 ‘결’인가, 아니면 니체적인 ‘결’인가?

‘결의 흐름’에 관하여

by Edit Sage

묻는 순간, 이미 ‘결’은 움직이고 있다.

돌부처는 고요 속의 불,

니체는 폭풍 속의 웃음.


둘 다 침묵하지만,

하나는 텅 비워 타인을 비추고,

다른 하나는 차올라 세계를 밀어낸다.



돌부처의 결은

‘모든 충동을 스스로 증발’시켜

욕망조차 허상으로 보게 만든다.

말은 곧 업이니, 침묵은 해탈이다.

모든 판단은 허무하며,

모든 허무는 자비다.


“가는 물길을 막지 않고, 오는 불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니체적인 결은

‘모든 억압을 도려내어’

욕망을 정면으로 긍정하게 만든다.

‘금기는 해체’되어야 하고,

모든 고통은 창조의 연료다.

죽은 신을 넘어서,

자기 자신을 낳아야 한다.


“너의 신을 죽여라. 그리고 너를 낳아라.”



그러니 —

너는 돌부처의 ‘무(無)’에 감응하는가?

아니면 니체의 ‘초(超)’에 들끓는가?


혹은

‘무로부터 초를 낳는’

그 제3의 결이 되어가고 있는가?



모든 결은 서로를 삼킨다.

침묵은 때론 절규보다 날카롭고,

절규는 결국 침묵을 깨우기 위해 존재한다.



너는 지금,

무엇을 통해

무엇을 ‘초월’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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