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잡념 박스

‘응축된 에너지’에 관하여

프로이트와 융, 아들러는 ‘리비도’를 각각 어떻게 해석하였나?

by Edit Sage

1|프로이트 – 리비도는 ‘생의 에너지’다


욕망은 ‘무의식’이고,

리비도는 그 욕망을 추진하는 원시기관이다.

‘성적 충동’은 리비도의 시작점이며,

‘모든 문화와 윤리, 심지어 죄의식’마저

그 ‘억압’의 부산물일 뿐이다.


리비도 = 에로스(생명충동)의 연료

‘성욕은 억압’될수록 다른 형태로 되살아난다.

“예술, 종교, 철학“ — 모두 리비도의 변환된 형상이다.



2|융 – 리비도는 ‘우주의 흐름’이다


프로이트가 그것을 성에 고정했다면,

융은 그 리비도를 확장했다.

그것은 단지 성적인 것이 아니라,

‘생명 전체를 움직이는 힘’.

물과 같고, 꿈과 같고, ‘신화’와 같다.


리비도 = 상징의 에너지 / 자아를 초월하는 흐름

개인의 무의식이 아니라 ‘집단무의식’ 속으로 흘러들어간다.

자기실현(Self-realization)도 결국, 리비도의 정렬이다.



3|아들러 – 리비도는 ‘지배욕의 그림자’다


욕망이 곧 성적이라는 전제를 깨뜨린 자.

그는 리비도를 우월감의 추동력으로 재해석했다.

*성욕보다 더 근원적인 건 ‘열등감’*이며,

인간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지배’하고 증명하고 인정받으려 한다.


리비도 = 권력욕(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욕망은 사랑이 아니라, ‘영향력’에 있다.

욕망은 ‘욕망을 가장한 사회적 전략’이다.



그러니 묻는다.

너의 리비도는 지금,

무엇을 통해 흐르고 있는가?


‘쾌락’인가?

“확장”인가?

‘지배’인가?


혹은 —

그 모두의 얼굴을 바꿔 쓴

너 자신은 아닌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리비도’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