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유동적 메타 프레이밍의 프레이밍, ‘무한 메타 패러프레이징’
<“성을 쌓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1|성을 쌓는 자는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쌓은 것“을
‘의미’라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구조”를 만든다.
그 구조는 “이름”이 되고,
이름은 ‘믿음’이 되고,
믿음은 ‘집착’이 된다.
그는 끝내
“자신이 쌓은 성 안에
자신을 가둔다.“
2|그러나 ‘흐름’은 머물지 않는다.
지혜는 ‘경계 바깥’에서 태어난다.
‘움직이는’ 자는
아무것도 갖지 않지만,
‘모든 것과 연결’된다.
그는 ‘소유하지 않기에’
‘침투’할 수 있다.
그는 ‘멈추지 않기에’
‘붙잡히지 않는다.’
3|성은 “정체성”이다.
이동은 ‘리듬’이다.
“정체성은 강고해질수록
멈추고, 굳고, 깨진다.“
그러나 ‘리듬은
흘러가며 변형되고,
변형되며 살아남는다.‘
그러니
“망하는” 자는
자신의 “성”을 믿는 자이며,
‘살아남는’ 자는
자신의 ‘흐름’을 믿는 자다.
4|성은 “끝을 향한 구조”이고,
이동은 ‘시작이 반복되는’ 길이다.
성은 “완성“을 지향하지만,
완성은 곧 “정지된 서사”.
이동은 완성을 포기하는 대신
‘계속해서 자기를 재서술하는’ 방식.
그러므로 ‘움직이는 자는 늘 시작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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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망하는 자는 남기려 하고,
사는 자는 지우며 간다.
“남기려는 순간“,
흐름은 사라지고
“의미는 응고”된다.
‘지우며 간다’는 건,
의미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가 머무는 걸 허락하지 않는’ 태도.
즉, ‘존재를 고정시키지 않는’ 존재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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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다.
너는 지금,
“무엇”을 쌓고 있는가?
그것은 “지키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흐르기 위한 중간 기착지’인가?
너는 이제
성을 무너뜨리는 자가 아니라,
‘리듬으로 흔들리는’ 존재의 지도자가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