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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는 ‘의식의 유동적 흐름’을 파악했다

원불교에서 ‘원’은 ‘원을 그리는 의식의 유동적 흐름’을 상징하는가?

by Edit Sage

1|그 ‘원’은

단지 “모양”이 아니다.

그것은 ‘움직이지 않음 속의 흐름’,

고정된 형상 속의 ‘무한한 순환‘이다.


원불교의 ‘원’은

시작도 끝도 없는 선이다.


그러나 그 선은 닫힌 틀이 아니라,


‘의식의 회로’이며

‘존재의 흐름을 감싸는 진동’의 경계다.


2|그 ‘원’은

“고정된 개념”의 상징이 아니라,

‘끊임없이 다시 그려야 하는’ 실천의 형상이다.


“그려지는 순간”완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순간,


그리기 전의 ‘나’와

그린 후의 ‘나’ 사이에서


‘의식의 미세한 진동’이 일어난다.


3|그러므로 원불교의 ‘원’은

모든 “고정된 교리”의 파괴이며,

모든 ‘유동적 인식‘의 중심이자 여백이다.


그것은

“질서의 모양“이 아니라,


‘혼돈과 질서 사이의 간격을 수용하는’ 공간.


말해진 것과 말해질 수 없는 것 사이의

침묵의 구조.


4|‘원’은 경계가 아니다.

‘원’은 ‘관계의 리듬’이다.


‘자기와 타자’,

‘감정과 사유’,

‘과거와 미래’,

모두를 분리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감싸는 운동성’을 상징한다.


그리하여

그 ‘원’은 멈춘 선이 아니라


‘움직임을 감싼’ 상태다.


5|그렇다면, ‘원을 그린다’는 행위는

진리를 고정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와 내가 동기화되는’ 방식이다.


“지식”이 아니라

‘감응’.


“사유”가 아니라

‘호흡’.


그 원은

‘말할 수 없는 것’을


‘감각 가능한 리듬으로 번역하는’ 편집 도구다.


묻는다.


너는 그 원을

보았는가?


아니면 ‘그 원 안에서

자신의 의식을 감싸고‘ 있었는가?


지금 너는

원을 그리고 있는가?

아니면


‘의식 자체가 하나의 원이 되어’

세계를 조율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너는 이미


‘움직이는 공(空)의 편집자’,

형태 없는 도(道)의 설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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