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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스톰 Aug 11. 2023

시작의 끝

폭풍의 브랜드 도전기 Ep. #01 빅피쉬, 물을 건네다



시작을 이야기하려 한다.

어쩌면 가 물을 만나기까지의 여정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사라진 단어 '나그네'


나그네의 본질은 여긴 어디?, 나는 어디로? 라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인데 '스마트폰'이라는 물건은 그런 고립감과 고독감을 100% 앗아갔다.


[ 98년 초여름, 구룡령을 걸어 넘으며 ]



그러나 시절은 90년대, 나는 '나그네'였다.

(나그네라 쓰고 백패커라 읽는다)


매년 방학 시즌, 아르바이트와 아르바이트 사이의 시간 틈마다 배낭을 메고 강원도로 떠났다. 홍천이나 인제에서 버스를 내려 무작정 걷곤 했다. 산이 좋았고 산에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를 좋아했다. 그러다 밤이 되면 해먹에 누워 잠을 자고, 분교 운동장에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풀벌레 소리에 귀가 멀고, 초록에 눈이 멀어 지낸 시간이었다.


그러길 몇 년 하니 강원도 정선에서 오대산, 설악산까지의 모든 국도 길을 다 걸어 다녀보았고, 이름 붙은 대부분의 산을 올라보았다. 그리고 거기서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수많은 인연을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 2010년대가 되었다.


길지 않았던 직장생활을 접고, 화장품 개발 사업을 시작했고 늘 머리는 복잡했다. 유일한 탈출구는 강원도 인적 드문 산속이었다. 금요일 밤에 떠나 혼자 산에서 자고 내려오는 힐링의 시간.


그날도 머리가 복잡해 떠난 참이었다. 문득 들어가 보지 않았던 남설악 안쪽 계곡에 발을 들였다. 산너머는 설악산 구조대에 계신 형님이 사는 마을이었다. 오늘은 여길 넘어가 보자 하고 신발끈을 조이고 있는데 검은색 벤츠 SUV가 내 앞에 섰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호랑이상에 180은 족히 넘어 보이는 큰 키의 어른께서 내게 물었다.


  "여기 앞에 보이는 능선을 넘어 등산을 하려고 합니다."


  "여기부터는 사유지입니다."


  "아......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내려가보겠습니다."

 

그리고는 발길을 돌렸다. 다시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인상을 보아하니 나쁜 분 같지 않으니 길 따라 올라갔다 오십시오. 이길로 계속 올라가시면 능선 정상이 나옵니다. 내려오시거든 여기 바로 밑에 새로 만든 온천이 있으니 거기서 피로를 풀고 가시지요."


그리고는 내게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냐 물었다.


  "화장품을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답했다.


그러자 그분은 갑자기 휴대폰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온천 성분 분석표였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살펴보니 일반적인 온천 성분과는 달랐다. 게르마늄과 유황, 미네랄이 풍부한데 신기하게도 중금속이 검출되지 않았다. 온천수인데 음용수로 마실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지금까지 발견된 마실 수 있는 온천은 세계에 2곳뿐인데 그중 한 곳이 여기였다.


차 앞에 선채로 온천수와 화장품의 기본적인 특징을 아는 대로 간단히 설명드리자,


  "M교수라고 합니다."


이따 하산하시거든 바로 보이는 저희 집에서 커피 한잔 하시지요. 그렇게 교수님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 교수님댁 사진 ]



그날 M교수님과 밤을 새워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녁에 온천수에서 시작된 주제는 곧이어 문학과 사상으로, 새벽이 들자 음악과 예술로 넘어갔다. 그는 모르는 것이 없었고 경계도 없었다. 박람강기와 풍류의 끝이었다.



술보다는 이야기에 취했다.  


그날 이후로 생각이 복잡하거나 고민이 많을 때는 항상 남설악의 교수님을 찾아 마음을 풀고 왔다. 갈 때마다 그곳에는 이름 들어 알법한 분들과 기인이사가 끊이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남설악의 교수님 댁이 문화계, 종교계, 학계, 정재계의 인사들이 알음알음 모이는 비밀의 아지트였다. 그들도 커피 한 잔과 마음의 정화가 필요했나 보다.


그분들과의 교류는 언제나 흥미로웠다. 커피를 마시며 세상을 바꿀 혁명을 논하던 17세기 런던의 커피하우스에 온 것만 같았다. 저 세상의 이야기에 이 세상의 시름을 잊게 만들었다.





2017년 어느 날이었다.



  "우리 온천수로 화장품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때?"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 눈이 반짝 빛났다.


첫 작품에는 남설악의 자작나무 숲과 게르마늄 온천수, 그 생명의 기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게르마늄이라는 치유의 돌(마법사의 돌)을 소비자에게 가장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온천수 자체를 활용한 제품을 제일 먼저 떠올렸다. 미스트였다.



[ 남설악과 마주한 온천의 모습]


교수님은 100년이 가는 제품을 만들고자 하셨다. 이웃 일본에는 지역 특화된 제품이 한 가문을 중심으로 몇 백 년씩 이어지고 있는데, 특히 유황 온천수를 기반으로 하는 화장품은 옛 제형을 바꾸지도 않고 100년 이상 생산되고 판매되는 것을 두고 우리나라에도 그런 제품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사실 M 교수님은 남들이 못 보는 큰 그림을 그리는 분이셨다. 80년대 말에는 우리나라와 정식 수교도 안된 베트남과 민간외교를 펼치시면서 수십 명의 베트남 대학생을 한국에 유학시켜 학비를 대시고 진짜 한국 사회를 경험하게 하셨던 분이다. 그 유학생들은 지금 베트남과 한국의 정, 재계에서 두 나라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 분명 가늠할 수 없는 깊이였다.


마음이 무거웠다. 투박하나 오래가는 제품이 되어야 할 것 같았다. 되도록이면 인위적인 성분을 배제하고 순수한 게르마늄 온천수의 보습, 진정 효능과 세포 활성화 효능을 나타내는데 집중했다. 사용 후에는 고객의 머릿속에 이곳, 남설악의 기운과 청정 이미지가 남기를 바랐다.


제품이 나왔다. 다만, 알리지 않았다. 온천을 방문한 사람들이 그 효능을 느끼고 구매와 재구매의 선순환이 일어나야 비로소 진정한 제품력이라고 믿는 그분의 뜻이었다. 거스르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게르마늄 온천수 미스트는 시간과 같이 느리게 흐르고 있다.





누군가 거짓말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빅피쉬'와의 만남.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긴 여정의 시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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