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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스톰 Nov 01. 2023

Stranger in SEOUL 01

BAHAR – Interview project #01  디자이너 박윤수



인터뷰에 들어가며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성수동 한양대학병원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과 청춘의 대부분을 동작구 상도동에서 보냈다. 서울 사람이었던 나는 한 번도 서울에서 낯설다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2023년 초가을, 디자이너분들과 서울패션위크를 함께하면서 그들의 몸짓과 눈빛에 처음으로 내 고향 서울에서 이방인이 된 것처럼 낯이 설었다. 그 느낌의 근원을 알고 싶었다.


서울컬렉션 빅팍쇼. 암전, 그리고 DDP 런웨이를 울리는 북소리와 함께 시작된 일직선의 곧은 워킹은 무대라는 상황에 익숙지 않은 내게 감동 그 이상의 것을 주었다. 이번 쇼의 준비 과정과 작품에 깃든 이야기, 그리고 그 자체로 패션 비즈니스의 역사인 인간 ‘박윤수’의 이야기를 풀어 가보려 한다.








‘From Heritage to young’

시간의 레이어링이 주는 깊은 울림


디자이너 박윤수


공식홈페이지 │ 인스타그램



Q.

누구에게나 생의 뒷산이 있다고 합니다. 그 산을 바라보고, 그 산에 몸을 기대고, 그리고 그 산을 닮아가지요. ‘박윤수’ 하면 한국의 패션 비즈니스의 역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누군가에게는 이미 큰 산이 되어 계신 박윤수 선생님께도 마음을 기대고 계신 뒷산이 있으신지요? 선생님께서 지금까지 패션계에 있으시면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으신 인물 혹은 사상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A.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원로라고 하니까 그렇네요. 저보다 더 큰 원로가 계시고 그게 바로 내 큰 산이었는데. 지금도 현역으로 존재하고 계시고 패션계에서는 거목이신 그분을 바라보는 느낌은 마치 달항아리 백자를 보는 느낌입니다.


진태옥 선생님, 우리나라의 1세대 디자이너이시지요. 학문으로 배울 수 없는 기술은 사람한테 배우게 되더라고요.


패션계에 나왔을 때 그분은 이미 정상의 위치에 계셨습니다. 나는 아주 신진이었었고. 선생님은 90년대에 파리컬렉션에 입성을 하셨어요. 파리, 뉴욕 다 섭렵하셨고 우리나라의 패션계에서 디자이너 브랜드 크리에이터로 해외에서 각광을 받았던 1호셨어요. 신진 디자이너로서 진태옥 선생님은 거울이었기 때문에 항상 선생님 컬렉션에서 꿈을 키웠던 것 같습니다.


70년대, 당시 국내외 통틀어 최초의 패션 콘테스트였던 중앙일보, 여성중앙에서 주최하는 '중앙디자인콘테스트'가 있었어요. 저는 중앙디자인콘테스트 제7회, 그러니까 80년도에 입상을 하면서 패션계에 입문을 하게 되었고, 그게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된 큰 기회가 되었지요. 그때 진태옥 선생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진태옥 선생님께서 저한테


"박윤수는 참 좋겠다. 날아가는 먼지만 봐도 아이디어가 솟아나는데, 지금 앞에 있는 남산이 나한테 다가와도 나는 충격을 못 느끼겠구나"


라고 하시더라고요. 내가 지금 서울패션위크에서 우리 신진 디자이너들에게 느끼는 감정과 같아요. 젊은 디자이너들은 미래에 대한 에너지가 충만해요. 우리의 과거에 그런 큰 산들이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패션의 산업이 여기까지 오고 앞으로의 미래가 좀 더 희망적이지 않겠나 해요. 왜냐하면, 뿌리가 없는 열매는 존재할 수가 없잖아요.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 처음으로 22년 10월에 DDP 야외에서 콘서트 같은 쇼를 했어요. 많은 아티스트분들과 패션 에디터, 디자이너 선배들을 모셔서 애프터 파티를 했는데 처음으로 진태옥 선생님께서 본인의 나이를 밝히시더라고요. 얼추 알고는 있었지만 선생님께서 내 나이가 얼마야 이런 말을 처음 공식 석상에서 하신 거죠. 이제는 당신께서 나이를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렇게 밝히시는 게 우리 후배들도 이제 더 전진해라 이 나이에도 내가 일이 있다는 의미이셨던 같아요.


아직도 일을 할 게 너무 쌓여 있어서 그분은 목요일이 은근히 두렵다는 거예요. 금요일 하루밖에 안 남았다고. 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신 거지요.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뭐 하지 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은 모를 거예요.


그리고 그분은 라이프 스타일에서도 늘 디자이너의 향기가 나시는 분이었어요. 건강관리도 철저하셔서 늘 수영장 50m 풀을 1시간씩 수영하셨어요. 패션 나이로 선생님은 아직 소녀세요. 물리적인 나이는 많으셔도 패션 나이로 보면 아직 소녀이시기 때문에, 나는 거기에 비하면 아직도 한참 갈 길이 멀고, 내가 거기까지 할 수가 있다면 성공하는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이든 끝까지 가봐야 알게 될 테니까.


뭐 조금 하다가 포기하고 그러는 요즘 세대는 쉽게 이해가 안 되겠지만, 그래도 뿌리가 있는 사람들은 이런 말에 다 공감하거든. 그런 큰 산들이 있었기에 이제 남의 그늘에 가리지 않게 되었던 것 같아요. 비록 어려운 시대를 만났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게 디자이너의 숙명이지 않겠나. 그런 분이 패션계에 존재하신다는 것은 우리한테는 보물이자 역사, 그리고 자존심이라고 생각합니다.





Q.

생각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 늘 더 어려운 작업인 것 같습니다. 방향이 정해지면 그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은 오히려 가볍게 느껴지지요. 선생님께서는 반년마다 돌아오는 패션위크의 주제와 방향성을 선정하는 기준이 있으신지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번 서울컬렉션에서의 주제는 꿈과 우연의 ‘판타스마고리아였는데, 제가 과문하여 깊이 이해하기 조금 어렵습니다. 그 내용을 조금 더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A.

이 질문은 너무나 자주 받는 질문이에요. 작가나 디자이너들한테 항상 시즌마다 고민하는 아주 단골 메뉴 같은 질문들이거든요. 제 경우에는 컬렉션의 구상할 때 아이디어를 찾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뭔가 다가와요. 찾아가는 게 아니라, 스스로 좋아진 거예요.


디자이너들은 그 시즌에 계속 작품 작업을 하다 보면, 다음 시즌 주제까지 오버랩이 되면서 아이디어가 같이 동반 상승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번 같은 경우는 내가 황석봉 작가님의 필체 그러니까 그분의 서체도 관심이 있었지만, 그분이 서예가이시면서도 회화적이면서, 채색 미학도 가지고 계시고, 또 컬러에 대한 감도가 남달라 그분의 작품에 매료되어 함께 작업을 하게 되었지요.


그분의 작품 중에서 내가 가장 호감이 가는 작품만 정리를 했어요. 특히 ‘지금이 꿈’이라는 작품과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수미산'이라는 작품에 매료되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번 디자인의 출발점은 ‘꿈’이 되었어요. 내가 생각했던 거랑 똑같았어요. 누구나 꿈을 꾸잖아요.


작가하고 디자이너가 생각을 함께하는 것은 작품을 풀어가는데 중요하지요. 세심하게 재구성하는 작업들에는 경계하지 않는 과감한 생각도 필요한데, 그 부분도 그분과 생각이 일치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작가님께도 고맙게 생각해요.


디자이너들은 항상 컬렉션 전에 고민하는 지점이 뮤즈, 그러니까 어떤 대상이냐예요. 대상은 여러 가지가 있어요. 시즌에 새롭게 다가오는 것들, 주변에 좋아하는 것들 중에서 어떨 땐 향기도 될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음악을 들어서 음감이 나한테 다가오는,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그런 충격도 있고, 영화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죠. 여행에서 느꼈던 추억이 될 수도 있지요. 그러니까 아이디어를 쫓아가기보다는 그냥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아이들이 있어요.


나는 그것들이 내게 말을 시킨다고 생각해요.


'이 시즌에 이것 좀 해봐' 이렇게 사물이 다가와서 나한테 관심을 준 거죠. 이렇게 최면을 걸어요. 어느 때 보면 두 생각이 이렇게 딱 일치가 돼요. 이제 그걸 갖고 디자인의 출발을 하게 되죠. 이 형체 없는 뮤즈와 시즌이 끝날 때까지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고 그래요. 너무 많이 싸워요. (웃음)


항상 평론가분들이 이번에는 컨셉이 뭐야? 어떤 걸로 해? 이렇게 물어볼 때 너무 범위가 넓고 막연해요. 왜냐하면, 나한테 날아오는 운석(아이디어)을 다이아몬드 같은 최고의 보석(작품)으로 만들려니까 나는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싸울 시간이.


그런데 재미있는 건 컬렉션이 끝나면 나보다 더 해석을 잘하는 훌륭한 에디터들, 패션 평론가들이 내 쇼를 관람하고 내가 의도했던 주제 의식을 넘어선 관점으로 바라보고 고급스러운 문장으로 다듬어 기사화되는 것을 보고 놀라기도 해요.



Q.

원하셨든 원치 않으셨든 선생님의 지치지 않는 패션을 향한 긴 여정은 이제 하나의 '헤리티지’가 되어 있습니다. 이 무형의 유산을 어떻게 다음 세대에게 전달해야 할까요? 어찌 보면 하나의 의무가 되어버린 것 같고, 선구자로서의 숙명 같은 느낌도 듭니다만 횃불은 든 자는 끝까지 불씨를 지켜 누군가에게 전달해야 하는 법이니까요.


A.

사실 많이 혼돈이 올 때가 있지요. 우리가 아까 진태옥 선생님 잠깐 말씀드렸지만 아직도 한국 디자이너들에 대한 헤리티지를 유지 보존 해야 하는 책임이 우리한테 있기는 한데, 디자이너가 한결같은 자기의 크리에이티비티를 유지하기 위해 자기 선을 지키는 과정은 디자이너라고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경제력도 있어야 되고 회사의 매출도 있어야 되고 자본주의 국가에서 어느 정도의 규모로 회사가 운영이 되지 않으면 디자이너들은 존재감을 유지하기가 어렵지요.



내가 이번에 파리에서 방문했던 ‘아제딘 알라이아(Azzedine Alaia)’라는 디자이너 회사를 방문했는데 회사가 하나의 ‘뮤지엄’이었습니다. 내가 그걸 보고 해야 할 일이 생겼어요. 우리의 소중한 패션의 역사를 보존하고 기록하고 정리해야 하는 사명감이 생겼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이 가진 패션에 뿌리를 본 거죠. 디자이너에게 한 획을 긋는 그렇게 좋은 장소가 만들어졌으니 그들의 후학들은 그런 것들을 보고 배우겠지요.


Fondation Azzedine Alaïa  [출처 : @bigparkys 인스타그램]


패션은 어떠한 가상공간에서도 체험할 수 없는 특수한 아이템이거든요. 입어보고 피팅을 해야 하기도 하고 소재 특유의 물성도 봐야 되니까. 더구나 패션은 공산품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디자이너의 공간에 와서 감도도 느끼면서 정신도 함께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 디자인의 영혼까지 함께 가져가야 되는 거예요.’


디자이너 브랜드는 일반 브랜드사와 달라서 제품을 양산하지 않기 때문에, 희소성이 있고 그런 디자이너의 혼과 정신이 있는 것들이 가상공간에서는 경험하기 어렵지요. 아무리 AI가 대세라 해도 사람들은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나 그리움, 옛 것에 대한 그 절대적인 향수를 느낄 거예요.


그 회사에 들어가자마자 입구에 알라이아의 작품들이 전시가 되고 2층까지 전시가 이어지고, 4층에는 우리가 생산하는 현장과 똑같은 상태를 볼 수가 있어요. 거기서 그들은 제조를 하고, 우리는 여기서 샘플 제작을 하겠죠.


운석을 다듬어서 보석을 만드는 것처럼 옷은 한 번에 이루어질 수 없는 작업입니다.


옷의 완성도는 여러 번 디자이너가 수정에 수정을 거쳐서 실험하듯이 나와요. 화장품도 하나하나의 실험에서 나오잖아요. 옷도 그런 과정을 거치니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정신과 노력으로 저런 결과들이 탄생을 하지. 이런 것들이 우리 아카이브들에 많으니까.  


이제 그런 쪽으로 매진해서 디자이너의 최종 허들 같은 그곳으로 전진을 해야 되겠지요.




Q.

좀 더 근원적인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패션 아티스트로서 ‘아름다움’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저는 화장품을 개발하는 사람으로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봤습니다만, 늘 정답이 없는 것 같습니다. 없는 답을 찾으려는 무의미한 노력보다는 선생님처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분들의 순수한 행위를 보면서 거기서 살짝살짝 드러나는 단서를 한 조각씩 맞춰가는 것이 오히려 아름다움의 실체를 재구성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A.

아름다움은 배어나는 거예요. 풍기는 거예요. 거기에 트렌드가 함께한다면 패션의 완성이 되지요. 이게 인위적으로 되는 건 아니에요. 사람을 보면 바로 스캔이 돼요. 그걸 보고 이렇게 저렇게 입었으면 좋겠다 생각해요.


제 직업이 패션디자이너라 그런지 시상식에 나온 배우가 옷을 잘 입은 것을 보면 찬사를 보내지만, 잘못 입은 것을 보면 참 아쉬워요. 그런데 그런 것은 인위적으로 꾸밀 수 없는 영역의 것이고 그건 그분들의 몸에서도 배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멋과 세련된 스타일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름다움은 배어나는 거예요.


아름다움은 정답이 없잖아요. 뭐 정답의 근사치이긴 하겠으나 배어 나오는 멋이 정말 진짜 진정성 있는 멋이라고 생각해요. 곱게 늙으신 분들 가끔 보잖아요. 참 멋진 분들이에요. 그분들은 어떻게 사진을 찍어도 다 멋있어요. 그분들이 풍기는 멋이 진짜 아름다움이라 생각해요. 거기에 패션, 뷰티 그리고 트렌드가 더해진다면 더 근사해지겠지요.




Q.

어떻게 보면, 지금의 ‘빅팍’이라는 브랜드는 ‘박윤수’라는 고민하는 한 인간이 만들어낸 새로운 인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빅팍이 주는 다양한 이미지를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기까지의 과정이 [브랜딩]이라면, 지난 30년 동안 선생님께서 브랜드를 만들고 고유의 색깔을 지켜오신 시간과 그 과정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저 또한 ‘바하르’라는 화장품 브랜드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사랑받기를 기다리고 있는 시점에서 세상의 인정을 받는 우리의 색을 내는 것, 그리고 그들과 함께 호흡하는 방법에 목말라 있습니다.


A.

가치관이 성장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내가 패션을 하지만 해외에 나가면 옷보다는 빈티지 인테리어, 건축물 이런 것들을 더 관심 있게 봐요. 그런데 좋아하는 디자이너가 있으면 나는 그냥 거기 가서 소품 하나만 삽니다. 나는 그 디자이너의 가치를 함께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브랜딩도 이렇게 가치를 성장시켜 가며 만들어야 합니다.


상당히 뼈를 깎는 뭐 기간이 필요하죠. 디자이너 브랜드 ‘빅팍’이 탄생해서 지금 10살이 됐는데 아직도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하나 생각을 할 때도 있어요.


아직도 '박윤수'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해요. 하지만 '빅팍'은 10살이 됐는데도 이름이 생소한 거야. 패션계 사람이 아닌 대중들은 '빅팍' 브랜드를 생소해합니다. 박윤수는 역사가 40년이니까. 패션에 발을 들인 게 1980년, 그때부터 올해가 43년째거든. '박윤수 올스타일’로 매진해 왔기 때문에 브랜드의 가치가 있죠.


회사는 점점 커지고 나서는 미술을 전공한 내가 경영대학원에 입학했어. 패션을 하다가 경영학에 심취된 것 중 하나가 경영 이론의 끝이 어디냐, ‘심리학’이구나라고 깨달았어요. 모든 게 심리다. 내가 상대방 심리를 모르면 내가 게임에서 져요. 내가 심리를 알아야지 그 사람을 설득하고 같이 친해지고 좋은 인연으로 가는 거지.


공부를 마치고 나니 회사에서 영업팀이나 관리팀들이 하는 이야기를 그때부터 그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요. 그전까지는 난 디자인만 한 사람이니까 결재판은 안 보고 스케치만 먼저 봤어요.  


원칙과 트렌드를 잘 이해하고 속도감 있게 자기 변화하고 변신하면 성공할 거야. 아마 ‘바하르’는 지금 해야 되는 시기이고 나는 한번 겪어봤던 시간이니까. 우리 ‘빅팍’은 계속 고민하면서 갈 거예요. 이제 내가 이 끈을 안 놓겠지. 이제는 내 분신이니까. 나도 계속하는 거예요.




Q.

마지막으로, 잘 살아남기 위하여 좋아하는 일보다는 잘하는 일을 하라는 격언이 떠오르는데요. 일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는 경지에 계시기에 더욱 궁금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신 것인가요? 아니면 잘하는 일을 운명처럼 하게 되신 것인가요? 한 분야의 프로페셔널로서 젊은 시절 일/업무를 대하는 자세는 어떠하셨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A.

예를 들어보면, 이번 서울패션위크에서 나인어코드와 안경을 콜라보했었어요.



그때도 그림을 이렇게 그린 거예요. 나의 영혼이 들어간 작품입니다. 이거는 캐드(CAD)로 할 수가 없죠. 이런 터치들은. 온라인에서 구현할 수 없는 이런 존재감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포부가 크고 꿈이 커야 돼. 소위 깡다구가 있어야지. 매일 고난을 겪고 있어도 디자이너는 표시 안 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패션디자이너에 대한 환상과는 다르게 보는 것이 다가 아닐 수 있어요. 그래도 자존심을 갖고 마음의 그릇을 비워가며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항상 한결같아야 되는 거예요.'


난 이 ‘한결같다’라는 시의 한 구절을 후배들에게 많이 이야기해 줘요. 항상 한결같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람은 참 많이 흔들리고 남을 의식하지. 누가 더 매출이 좋았는지, 누가 더 유명해졌는지. 그런데 어느 순간 자명해지더라고요. 그냥 과정인거지. 그냥 나는 나야 나, 그냥 너는 너고 그리고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 다 인정해 주면 오래가거든요. 그렇잖아요. 그게 변화 없이 오래가는 거예요.









인터뷰를 마치며


화장품 브랜드를 런칭하고는 계속하게 되는 고민, 어떻게 사람들의 머릿속에 우리 브랜드를 안착시킬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선생님을 만났다. 그가 헤리티지를 만들어낸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러나 순정파, 잊지 못하는 첫사랑의 기억 그리고 시간의 깊이, 이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돌아와 음성을 텍스트로 편집하기 위해 그가 만들어낸 패션 산업의 역사, 그리고 남겨진 유산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듣고 정리하면서 우리의 브랜드가 만들어낼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것. 어렴풋하지만 가야만 하는 길이라는 결기 같은 것이 마음에 맺힌다. 그렇게 묵묵히 길을 걸어가다가 지칠 때 다시 찾아뵙고 말씀 나누면 다시 걸을 힘이 생길 것 같은 그런 분이다.   


조심스레 요청드린 자리임에도 흔쾌히 시간을 내주시고, 오랜 인터뷰 경험으로 오히려 질문자를 배려해 주시는 모습에서 진정한 프로페셔널의 향기를 느꼈다. 선생님과 나누었던 긴 이야기를 지면에 모두 풀어낼 수 없음이 안타깝다.


그럼에도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이 인터뷰가 오늘 [빅팍]과 [바하르]가 서있는 곳의 고민이 무엇인지 살짝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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