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은 최근에 새로운 사회적 기업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암 환우와 가족, 그리고 봉사자들에게 문화예술을 기반으로 한 정서적 치유와 마음 돌봄을 제공하기 위한 활동을 주로 하는 곳이었다. 이번 제 1회 행사에 지영은 업무 협약식의 사회를 맡게 되었다. 차분히 협약을 맺는 양 기관에 대한 소개를 하고, 내빈 소개를 하고, 기념촬영까지 무사히 협약식을 마무리하고 나서야 미니 공연을 마음편히 즐길 수 있었다.
작지만 따뜻한 공간이었고, 곧 암 환우분들과 봉사자 분들, 그리고 이 행사에 관심을 갖고 있는 다양한 영역의 내빈분들이 함께했다. 양 기관은 업무협약을 통해 환우와 가족 정서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 자원봉사자-종사자 마음 회복 프로그램 개발,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문화예술 치유 활동 확대 등에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첫 무대에서는 러시아 출신의 음악가들이 바이올린과 첼로, 피아노의 트리오 공연을 선보였다. 지영은 익숙한 멜로디였지만, 이 공간이 주는 힘과 참여자들에 따라 또 다르게 해석되는 멜로디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악기로 전해지는 위로였고, 다독거림이었다. 특히, 마지막 곡이었던 '사랑의 노래'의 산뜻함이 그들의, 그리고 지영의 무거운 현실을 조금이나마 덜어버릴 수 있기를 바랐다.
그 뒤로, 소프라노의 가곡과 뮤지컬 배우의 뮤지컬 명곡, 여고생들의 K-pop 무대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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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김효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화내지마
슬픈 날들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들 오리니
세상이 그대를 버릴지라도 슬퍼하거나 화내지마
힘든 날들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꼭 올거야
마음은 미래를 꿈꾸니 슬픈 오늘은 곧 지나버리네
걱정 근심 모두 사라지고 내일은 기쁨의 날 맞으라
삶이 그대를 차마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화내지마
절망의 날 그대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꼭 올거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화내지마
힘든 날들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꼭 올거야
마음은 미래를 꿈꾸니 슬픈 오늘은 또 지나버리네
걱정 근심 모두 사라지고 내일은 기쁨의 날 맞으라
삶이 그대를 차마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화내지마
절망의 날 그대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꼭 올거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화내지마
슬픈 날들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들 오리니
세상이 그대를 버릴지라도 슬퍼하거나 화내지마
힘든 날들을 참고 견디면 기쁨이 날 꼭 올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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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은 암환자였던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가 이 자리에 있었으면 이 노래들에 위안을 받았을까 생각했다.
이 노래들을 듣고, 마음 위안받고, 그 힘으로, 살아갈 날을 하루라도 더 연장시킬 수 있었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살날이 늘어나서, 의학기술의 도움을 받았다면 지금도 살아계셨을까 생각했다.
10년 도 더 된 해묵은 가정들이 다시 한번 지영을 노크했다.
지금이라도 이 음악이 엄마에게 닿을 수 있다면, 이 음악이 엄마의 영혼을 위로할 수 있다면
그것이 일방적인 전달이라도 충분할 것 같았다.
영상통화를 할 수는 없더라도, 핸드폰이 나오기 전에는 삐삐로 연락을 했던 것 처럼...
어쩌면 엄마도 지영에게 전하고 싶은 많은 메세지와 사진과 영상이 있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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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진 - 김진호
바쁘게 살아온 당신의 젊음에 의미를 더해줄 아이가 생기고
그 날에 찍었던 가족 사진 속의
설레는 웃음은 빛 바래 가지만
어른이 되어서 현실에 던져진
나는 철이 없는 아들, 딸이 되어서
이곳 저곳에서 깨지고 또 일어서다
외로운 어느 날 꺼내본 사진 속 아빠를 닮아있네
내 젊음 어느새 기울어 갈 때쯤
그제야 보이는 당신의 날들이
가족 사진 속에 미소띈 젊은 우리 엄마
꽃피던 시절은
나에게 다시 돌아와서
나를 꽃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버렸던
그을린 그 시간들을 내가 깨끗이 모아서
당신의 웃음꽃 피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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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지영의 마음은 슬픔과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지영에게 엄마는 배움에 목마른 모습으로 남아있었다.
그리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소신있는 신여성이었다.
지영의 엄마는 어느 날, 새롭게 배운 노래라며 손글씨로 노래가사를 적어 주방에 붙여 놓고는
설거지를 할 때에도, 잠시 짬이 날 때에도 연신 흥얼거렸다.
Such a feelin's comin'over me
There is wonder in 'most ev'ry thing I see
Not a cloud in the sky,
got the sun in my eyes
And I won't be surprised if it's a dream
Everything I want the world to be
Is now comin'true especially for me
And the reason is clear,
it's because you are here
You're the nearest thing to heaven that
I've seen
*I'm on the top of the world
lookin' down on creation
And the only explanation I can find
Is the love that I've found
ever since you've been around
Your love's put me at the top of the world*
Somethin' in the wind
has learned my name
And it's tellin' me that
things are not the same
In the leaves on the trees
and the touch of the breeze
There's a pleasin' sense
of happiness for me
There is only one wish on my mind
When this day is through
I hope that I will find
That tomorrow will be jus! t the same
for you and me
All I need will be mine if you are here
Repeat*
I'm on the top of the world lookin'
down on creation
And the only explanation I can find
Is the love that I've found
ever since you've been around
Your love's put me at the top of the world
Top of the world - Carpenters(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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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지영의 엄마는 추석을 이틀 앞두고
연휴를 맞아 부랴부랴 지영이 병원을 찾고 나서야, 그 날 새벽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거친 숨소리를 연신 내던 엄마를 위해
지영은 평소 엄마가 좋아하시던 Top of the world를 귀에 꽂아드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마음 속으로 그 노래를 따라 부르기라도 하듯 지영의 엄마의 숨소리는 잦아드는 듯 했다.
이모의 꿈속에서 처럼, 엄마가 좋아하던 노래 가사 속의 이야기 처럼
지영의 엄마는 더이상 아프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는 곳으로 귀한 대접을 받고 있을 것이다.
지영과도 어린 시절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이모는 지영의 엄마가 숨을 거두기 전, 꿈을 꾸었다고 했다.
너무나 곱게 화장을 하고, 이름 있는 재벌집으로 시집을 가게 되어 근사한 꽃가마를 타고 있었다고 했다.
이모는 지영의 엄마에게 '내 동생 너~~무 예쁘다.' 연신 감탄하며 축하해 주었다고 했다.
평소 화장이라고는 립스틱 하나 바르고 다니던 수수한 모습과는 달리
빠듯한 살림안에서 검소하게, 알뜰하게, 미니멀리스트로 살아가던 생전의 모습과는 달리
아마도 그곳에서는 여유와 화려함을 누리고 있으리라.
배우고 싶은 것들 다 배우고, 공부하고 싶은 것들 부족함 없이 배우며 행복한 모습이리라.
지영은 엄마에 대한 마지막 기억을 떠올려본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이미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었음에도
지영은 암 따위를 엄마가 이겨내지 못하리라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한 해 한 해, 시간이 지날수록 지영은 그런 과거 자신의 모습이 한없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좀 더 미리 현실을 깨달았다면
마음의 준비를 했더라면
엄마와 함께 할 수 있는 날이 길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랬다면 뭐가 좀 달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