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보자보자 하니까

by 다림

연말이 되었다. 지영은 여전히 고군분투중이었다. 아무것도 나아진 것은 없었다.

숨막히는 공기, 한숨섞인 피드백. 그 어떤 것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만히 그 상황을 받아들이기에는 하루하루 무너져내리는 마음을 다잡을길이 없었다.


결국 지영은 학생상담센터를 찾았다. 인권센터를 찾고, 새로운 모임에 참여하면서 조금은 괜찮아졌다싶었다가도 결국에는 그녀의 작은 반응에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증상을 이겨낼 수 없을것만 같았다. 이제는 더이상 지영이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건 없어보였다.


그렇게 학생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던 지영은. 자신이 관계중심적인 사람이고, 그녀는 관계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차이점에 집중했다. 이 곳은 일하는 일터이고, 관계를 중심으로 일을 해 나가는 지영의 업무 스타일이 이 상황을 더 크게 받아들이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관계를 맺지 않고 일을 하는 방식'이라... 지영에게는 다소 낯설고 충격적인 명제였다. 관계를 빼고는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지영이다.


일을 하면 그만이었다. 일이 되도록 하면 그만이었다. 그 과정에서 관계의 친밀함은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관계의 친밀함을 기대하면 할수록 자폭이었다. 그저 주어진 역할과 성과만 생각하면 될 일이었다. 그토록 지영이 숨막히다 느꼈던 많은 부분들이 머리로 이해가 되었다. 지영에게 정서적 안정감은 산소와도 같았다. 감정의 교류가 없는 일중심의 위계적인 사무실이 지영에게는 숨을 쉴 수 없는 수중과도 같았다.


지영은 누구보다 일을 잘하는 사람이기 보다는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 같다. 관계가 중요한데, 그 관계가 건강하지 않을 때도 꽤 오래버틸 수 있는 것은 강점일까 미련일까. 지영은 자신이 조금만 더 이해하면 상황이 나아지리라 믿었다. 그 관계에서 자신이 조금 더 이해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 믿었다. 지영은 경쟁보다는 협력을, 평가보다는 인정을, 비난보다는 건설적인 피드백을, 단기성과보다는 성장을, 소모가 아닌 회복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사람을 키우는 문화'에 가치를 두었던 것이다.


지영은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 극명하게 갈등으로 드러난 적은 처음이었다. 자신의 특성과 강점이 이 조직에서는 부적응에 가까운 특성이라는 점이 지영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관계지향적인 자신의 특성이 이렇게 까지 부정적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단 말인가.


그간의 지영의 수고가 어쩌면 자신의 자만이었을지 모를일이라 생각했다. 좋은 의도가 타인에게는 반드시 좋은 의미가 아닐 수 있음이 어째서인지 가슴아팠다. 어째서였을가. 홀가분할법도 했을 텐데. 그것이 지영에게는 왜 상처로 가슴에 콕 박혔을까. 여전히 자신의 선한의도에 대해 옳았다고 주장하고 싶었을까. 이건 다름의 문제가 아니라, 선한 의도를 선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녀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싶었을까.


이러저러 어수선한 생각들을 뒤로하고 지영은 자리로 돌아왔다. 몸과 마음을 다잡고 일에 집중했다. 자신이 맡은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 그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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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의 사무실에는 두 개의 센터가 함께 있다. 가끔 밥을 같이 먹기는 하지만 거의 교류는 없는 편. 하는 일도 거의 연관되지 않아 개인적으로 각자 친분을 쌓아 지낼 뿐이다. 지영은 자신의 하소연을 들어주던 옆 센터의 연구원이 임기만료로 퇴사하는 바람에 그 빈자리가 못내 아쉽다.


지영은 자신의 하소연을 하면서 동시에 옆 파트의 돌아가는 상황을 들었다. 여기나 거기나. 그 센터만의 어려움을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으나 지영이 관여할 일을 아니었기에 잠자코 관찰모드로 지낼 수 밖에 없었다. 이래저래 여러 사항이 중첩되었으리라. 옆 센터의 연구원 한 명이 그 쪽 파트의 연구교수에게 반기를 들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반기를 든 그 연구원은 평소 뱀같이 구는 면이 있었다. 뒤에서는 불만을 토로하고, 사람들의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들어 놓고, 정작 자신은 앞에서 정의롭고 예를 갖추는 듯한 이중성에 지영은 이미 거리를 둔지 한참이다.


그의 반기드는 모습에 지영의 심장이 반응했던 것일까. 마음을 다잡고 사무실에 들어온 지영은 또 한번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말도 안되는 토를 다는 그녀를 들이받았다.


'보자보자 하니까 정말.'


한시간에 걸쳐 지영은 그녀와 말다툼에 가까운 대화를 나누었다. 누군가 먼저 선빵을 날렸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영은 그때가지도 사람과 사람 간의 갈등은 대화로 풀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서로가 오해가 있다면, 풀면 그만이라 믿었던 것 같다. 다만, 지금은 고름이 맺혀 썩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가 생각했다. 둘이서만 이야기를 한다면 그녀는 자신에게 유리한 내용을 요리조리 왜곡하고 전달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염치불구 다른 센터의 연구교수님을 옆에 앉혀 놓고 장작 1시간을 열변을 토로했다. 챗바퀴 돌든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기도 했다. 지영은 자신이 오해한 부분도 있었고, 자신의 말이나 행동에 그녀가 오해한 부분도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다 쏟아내고 나니 속이 후련해지기도 했다. 오해가 있었던 부분은 오늘 이야기 한 것으로 정리하면 그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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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련했던 마음도 잠시. 상황이 종료되고, 그 상황을 돌이켜 보며 지영은 이유모를 찝찝함이 올라왔다. 너무 곪아 있었던 것이 터진데서 온 후련함이었을 뿐. 그녀와의 대화가 허심탄회하게 마무리된 것은 아니었음을 직감했다. 너무 흥분해서 순식간에 지나갔던 대화의 순간들을 다시 잡아챘다. 생각이 나는데로 메모장에 기록해 나갔다. 자신이 한말과 그녀가 한말들을. 물음표가 느낌표로 변한 지점들도 분명 있었다. 그러나 지영을 찜찜하게 만드는 그녀의 말과 표정 행동들이 다시금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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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가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 실수였다. 그렇다고 하나하나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그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최선은 아니었으리라. 벌어져야 할 일이 벌어졌을 뿐이다. 그녀는 자신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결백했다. 그녀는 이 모든 상황에 원인이 지영에게 있음을 계속해서 각인시키려 했고,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그녀는 지영과 관계를 회복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어차피 같이 일을 해야 할 사이라면, 어느 정도는 타협이 필요하지 않나? 본인에게 인사권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녀에게 지영은 여전히 무책임한 사람이었고 무능력한 사람이었다.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에게 '고졸도 아니고' 라는 표현을 사용한 걸 보면, 평소 지영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만 하다.


말을 하지 않은 편이 차라리 더 나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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