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면심사 결과, 재임용 미승인으로 결정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퇴직과 관련한 행정 절차 및 세부사항은 아래 내용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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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은 재임용 면접을 보고 나서 한 동안 찜찜함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형식적으로 진행한 면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수치스러웠고
재임용을 결정하기 위한 면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일방적으로 코너에 몰린 상황이었다.
이러나 저러나 기분나쁜 상황이었다.
재임용이 되면 되는 것도, 안되면 안되는 것도 억울한 느낌.
옆 센터의 연구교수와도 결론없는 토의를 해 보았으나, 결과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면접이 끝난 후 그녀의 갑작스러운 친절모드도 찜찜했고, 여러모로 알 수 없는 기분나쁨이었다.
작년 12월 까지만 해도 지영은 계약기간만 채우고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중간에 팀장님이나 인사담당자를 통해 다른 센터로 옮길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정도였다.
그러나 생각보다 그런 이동에 보수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차피 옮기고 싶은 센터의 공석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이러나 저러나 버티기모드로 돌입한 것이다.
재임용이 안된다면? 그것은 정말로 자신에게 좌절스러운 상황이라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올 3월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들의 기뻐할 표정이 제일먼저 떠올랐다.
지영은 자신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 곳을 놓지 못하고 있었나 반문했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라는 것 말고는 아무런 메리트가 없는 이 곳을.
어디가서 여기 소속이라 말하기에는 지영의 정체성과 거리가 멀어 명함 내밀기도 꺼려졌던 이 곳을
아들이 아직 어리다는 것을 핑계삼아 물스펙의 이곳을 미련하게 놓지 못하고 있었던것 아니었을까.
그만둔다 생각하니 가장 불필요한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던 덩어리가 없어지는 개운함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계약기간이 만료 될때까지 지영은 왜 자신이 먼저 그만둬야겠다는 결정을 하지 못했을까? 반문했다.
이 사무실은 지영에게 또다른 가족이었다.
지영은 시골마을에서 조부모님과 동생 2명과 함께 생활해온 K-장녀였다.
상사의 자리를 곧 부모였고, 직장동료는 곧 나의 형제자매였다.
내가 힘들다고, 중간에 그만둔다고 하는 것은 이 둘에게 부담을 주면서 도망가는 형색이었으리라.
그것이 의식적이었건 무의식적이었건 간에, 지영 스스로가 뿌리치지 못한 강력한 이유였으리라.
그리고 실은 이 모든 상황들이 지영이 꿈꿔왔던 모습이라는 점이 소름돋았다.
지영은 처음 이 곳에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을 했던 때를 떠올렸다.
이 정도 학교의 네임벨류에 합격자가 부족해서 계속 채용공고가 뜬다? 지원자가 없거나? 빨리 그만두거나?
이런 곳은 채용이 되는 것이 더 문제가 될 수도 있겠는데? 생각했던 지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대학의 본인 제자들만 하더라도 공석이 없을 것 같은 좋아보이는 자리에
몇 달 단위로 계속 채용공고가 올라와 있을 것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 수 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영은 그것이 자신에게는 기회라 생각했다.
별로인 자리인 덕분에 자신에게도 기회가 생긴거라 생각했다. 그저 자신이 잘 적응하면 그만이라 생각했다.
들어가서 보니, 정말로 그런 부분은 없지 않았다. 대표급 교수의 지도학생들은 이 조직을 기피하고 있었다. 그리고 센터의 연구교수 자리 또한 포지션이 애매하다 보니 금새 공석으로 변하거나 지원자가 없는 상황. 지원자가 있어도 아무나 뽑지도 않는 상황. 지영의 무의식은 연구교수와 동료연구원 자리에 누군가가 있는 것을 원했다. 아무도 없이 혼자 덩그러니 있는 것이 무엇보다 싫었다. 그런 무의식이 지금이 상황으로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지영이 일하는 동안 연구교수 자리도 계속해서 공석이고, 연구원 자리에도 공석이었다면 그것이 가장 최악의 상황이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어중이 떠중이 모든 역할을 박사급 연구원이라는 이유로 떠맡아 하고, 그 역할이 힘들어 그만두고 싶어도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그 또한 힘들었으리라 생각하면 아찔하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지영의 아들은 아니나 다를까 3월부터 지영이 출퇴근을 하지 않는다는 소식에 기뻐했다. 지영은 40개월까지 가정보육을 한 요즘 세상에 자랑스러워할만한 커리어를 갖고 있는 만큼 자녀의 정서적 안정감과 보육에도 진심이다. 그런 그녀가 양가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맞벌이라니. 정말 잔인한 상황이었고, 자연스럽게 해결이 된 것이다. 최소한 한 학기는 초등학교 생활 적응에 신경을 썼어야 할 상황에 그 때가 되면 뭔가 방법이 생기겠지 하며 꾸역꾸역 출퇴근을 한 지영이었기에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몰려왔다.
지금 하던 일이 지영의 커리어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는 만큼 리스크도 없다. 평소 하던 연구 프로젝트는 계속해서 하면 되고, 오히려 그 프로젝트에서 확장하여 더 많은 콘텐츠 개발과 강의준비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3월부터 새로운 전문가 과정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 컨텐츠를 찾아내려고 이 일련의 경험들을 하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하는 지영이다.
분명 잘된 일이 맞는데...
이유 모를 이 찝찝함은 왜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