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하고도 감사한 일이다.
이토록 강렬하게 인생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또 어디있겠는가.
이 강렬한 경험은 지영의 행동력에 엔진이 되어주는 듯 하다.
지영의 자리를 채워줄 새로운 직원채용 공고에는 약간의 문구들이 수정되어 게시되었다.
업무란에는 '연구 기획 및 홍보'라는 문구가 추가되었고
계약조건에는 채용시~ 2월 28일까지라는 내용이 추가되었다.
그렇다면
본래 지영의 역할은 연구 기획 및 홍보는 포함되지 않았음을 의미하고
계약조건이 11개월이라는 사실이 명시 되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러한 잘잘못을 따지고 넘어갈 것인가 그냥 안고 갈 것인가
연구교수의 행실에 문제를 삼고 넘어갈 것인가 그냥 털고 갈 것인가
매 순간 지영은 또다시 자신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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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40개월간 가정보육하면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지영은
어쩌면 박사과정생일 때 겪었어야 할 일들을 사회에서 배우느라 성장통을 겪는지도 모르겠다.
박사학위를 받은 것에 대한 겸손이었을까, 자신의 역할을 여전히 과소평가 하고 있었다.
사회적으로, 조직에서 박사에게 기대하는 수준에 지영이 못미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을 알려주는 방식이 꽤나 차가웠을지 모른다.
이제는 더이상 다른 사람의 지시에 성실하게 따르는 것이 최선이 아닐 수 있다.
상사의 결정에 따르는 것이 박사로써 무책임한 모습일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하고, 때로는 주장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전문분야를 잘 살리고, 자신의 능력과 영향력을 극대화 시키는데 시선을 돌려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박사과정생일 때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졸업을 했더라면 좋았을 것들을 이제서야 하게 된지도 모르겠다.
타블로가 유투브에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똑같은 물이라도 어떤 환경이냐에 따라 그 값어치가 달라진다고
자신을 무가치에 하게 쓰는 곳에 굳이 묶여있을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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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에 그만두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지금까지 벌여놓은 많은 것들을 (박사급 연구원이 해야 할 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행정업무임에도) 마무리하고 떠날 수 있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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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에 해를 끼친다고만 생각했던 암적인 존재인 그녀는 재계약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음 학기에 강의를 2개나 맡게 되었다. 학부, 석사, 박사학위가 서울대학교라는 스펙이 한국사회에서 빛을 발하는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좀 한다고 오냐오냐 키우지 말 것
능력보다는 인간이 되는 것이 우선
공감능력과 소통의 중요성
지영은 육아에 있어 중요한 것들을 되새겨 본다. 여러 모로 귀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AI가 뒤흔들 앞으로의 세상에는
이왕이면 '인간의 존엄성'과 '살아가는 의미'가 중요한 철학으로 자리잡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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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은 이번 기회를 통해 정말로 자신이 추구하는 바와 앞으로의 미래계획에 대해 고심하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누군가의 결정에 휘둘리고 따르는 것을 최선이라 여겼지만, 이제는 자신에게도 날개가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지금까지는 날개를 잘 다듬는 과정들이었다면 이제는 나는 법을 터득하고,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자신의 숙명임을 깨달았다.
지영의 남편은 어느날 지영에게 물었다.
"만약 아무일도 하지 않아도 일년에 배당금으로 3000만원 정도 나온다고 하면 어떨 것 같아?"
지영은 평소 만약~이라는 가정을 즐겨함에도 불구하고 그 질문이 너무 허무맹랑하게 들렸다. 무언가를 보란듯이 하기에는 적은 금액같았고, 그 돈이 없다고 해서 현재 큰 불편함이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리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 같은 금액이었다.
그 질문은 몇 분뒤 지영의 머리를 띵 울렸다. 생각이 바뀌었다. 그리고 지금 지영이 어디에 돈을 쓰고 싶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지영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교육이나 취미를 위해 돈을 쓰는 데에 인색한 사람이었다. 사치처럼 느껴졌고, 그럴 자격이 없다고 여기는 듯 했다. 만약 지금의 생활에서 여유가 생긴다면, 아니 지금 수준으로도 어쩌면 충분했다.
지영은 이제부터라도 스스로에게 투자하기로 마음먹었다.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 되기 위해 용기내어 한발한발 내딛어 보기로 한 것이다.
그 첫 시작이 아마도 원예코칭지도사 과정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