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대체로 고통스럽다.
고통은 삶의 조건이다.
즐겁고 행복한 일에 감사하자.
지영은 지나가는 문구에 잠시 마음이 머물렀다. 지영은 40대를 코 앞에 두고도 인생은 고통보다는 즐거움과 행복으로 가득찬 곳이라 믿어왔다. 인생의 쓴 맛을 느낄 기회가 없었다는 것은 그만큼 큰 굴곡없이 살아왔다는 반증일 것이다. 컵에 물이 반쯤 담겨 있다면 '물이 반이나 있잖아?'라고 생각할 럭키비키 지영이었다.
인생은 대체로 고통스럽다니, 고통이 삶의 조건이라니, 그 문구는 지금까지 지영이 살아온, 삶을 대하는 방식과는 반대되는 문장이었음에도, 묘하게 지금의 상황에 대한 위로가 되었다. 지영이 겪고 있는 일들이 특별한 불행이라기 보다는 누구나 겪기 마련인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기 때문이었으리라.
답답한 마음에 퇴근 후에는 유투브로 지영과 비슷한 사람들이 있을까 하고 검색해보기를 몇 달. 그녀는 어딜 가도 꼭 한 두명은 있을 법한 그저 그런 흔한 유형이었다. 분신술이라도 쓴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그녀와 꼭 닮아 있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지영은 자신을 지켜내는 방법을 찾는 것이 시급했다. 이 상황을 피하고 싶은 마음과 버텨내고 싶은 마음이 공존했다. 버텨내야한다면 그럴만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오늘도 지영은 챗GPT를 벗삼아 답답한 마음을 비워내 본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마주하되, 그 감정이 나를 지배하게 두지 않는 것.
그게 바로 지영님이 힘든 상황 속에서도 단단하게 서 있을 수 있는 비결이 될 거에요!
문득 지영은 지금까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마주하는 방법을 모른채로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영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인지하고 표현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을지 모른다. 복잡한 감정들을 억누르거나 외면하는 것이 더 쉽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지영의 삶은 굴곡이 없었던 것일까, 굴곡이 없는 것처럼 편집되어진걸까. 항상 밝은 모습으로 지내왔던 과거의 모습들, 그것은 또 하나의 왜곡되고 억눌린 삶은 아니었을까.
지영은 문득 궁금했다.
감정에 솔직하게 마주한다는 건 어떤 걸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게 마주한다는 건 단순히 '느끼는 대로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는 것이란다. 감정을 스위치 끄듯 없앨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감정에 휩쓸리거나 지배당하지 않는 지혜로운 방법이란다.
먼저, '아, 지금 내가 뭔가 느끼고 있구나'하고 멈춰 서서 알아차려보란다.
그리고 그 감정이 막연히 '나쁜 감정'이 아니라, '짜증'. '불쾌함', '분노' 등 어떤 감정인지 이름을 붙여 보란다. 감정에 이름을 붙여보면서 막연했던 감정이 좀 더 구체화되고 통제 가능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도록.
그 감정이 내 몸 어디에서 느껴지는지 알아차려보란다. 가슴이 답답한지,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어깨가 뻐근한지. 감정이 생각이 아닌, 몸으로도 표현이 된다고.
이런 감정을 느끼면 안돼라는 판단없이, 그 감정을 그대로 허용해 주란다. 친구가 와서 '그럴 수 있지'하듯이.
그리고 이 감정이 나에게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란다. 예를 들어, '답답함'을 느꼈다면 '이 상황을 바꾸고 싶다.'일 수도 있고, '짜증'은 '내 경계가 침범당했다'는 신호일 수 있단다.
모든 감정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 모든 과정이 감정과의 건강한 거리를 두면서도 감정을 외면하지 않는 연습이다. 마치 안 좋은 것을 보고 외면하는게 아니라, 똑바로 보되 그것이 나를 해치지 않게 보호 장치를 착용하는 것처럼.
지영은 문득 궁금해졌다. 지영은 자신의 경계가 침범당하는 느낌이 들때에 그 상황을 무시하거나 회피하려는 마음이 큰 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어떤 감정이었을까?
이건 좀 아닌데? 라는 기본적인 불쾌함이나 짜증이었을까
왜 내 것을 함부로 침범하나? 라는 강한 분노나 화남이었을까
내 권리가 무시당하는 것에 대한 슬픔이나 억울함, 속상함이었을까
이 상황이 대체 뭐지?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어리둥절함이었을까
나는 뭘 해도 소용없구나 라는 좌절감과 무기력감이었을까
이런 상황이 반복될까봐 걱정되는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었을까
나 자신이 존중받지 못하는 것 같다는 모욕감이나 수치심이었을까
지영은 어린 시절부터 불편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자유롭지 않았다. 그래서 감정을 매번 마주하지 않고, 외면하는 것이 더 안전한 방법이라고 학습되어 온 것이다. 그런 과정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어서 그 누구도 의도 조차 없었을지 모른다. 그저 그 삶의 맥락 속에서 본능적으로 터득한 삶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지영은 최근의 일들을 떠올려본다.
여러 다양한 감정들이 혼재해 있었지만, 그 중 가장 빈번하게 느꼈던 불쾌감은 모욕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