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모든 감정은 모든 메세지를 담고 있다.

by 다림


지영은 그녀를 떠올리며 눈을 떴다. 뒷골이 땡겼다. 아마도 전날 쓰러지듯 잠든 탓에 자세가 불편했기 때문일 것이다. 꿈을 꾼 건가? 꿈을 꾸긴 했다. 그녀에 대한 꿈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뭔가 쫒기듯, 해결되지 않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안간힘을 썼던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뒷골이 땡기는 건가 싶기도 하다. 새벽에 분명 천둥번개가 쳤던것 같은데... 그것도 꿈인가 싶기도 하다. 어디까지가 지영의 생각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았다. 확실한건 아침부터 그녀가 떠올라 기분이 너무 찝찝했고, 그런 기분이 너무 지겹게 느껴졌을 뿐이다.







"모든 감정은 메세지를 담고 있다"






어제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아침부터 이런 찝찝함이 느껴지는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 머리로는 인식하지 못하는 메시지. 알아차려 달라고 몸이 반응하는 것이다. 지영은 출근준비를 하면서 이 감정이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했다. 그녀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아닌, 내 몸이 나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무엇일까 고민했다.







"??????????????????"

















"!!!!!!!!!!!!!!!!!!!!!!!!!!"






질문을 던지자, 거짓말처럼 대답이 돌아왔다. 그 동안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아서 알지 못했을 뿐이었다. 뇌리에 꽂혔던 그녀의 말들을 떠올려본다. 별 뜻이 있었을지, 없었을지 모를 많은 말들이 지영의 가슴에 꽂혀 있었다. 그 말들은 왜 지영을 그토록 힘들게 만들었으며, 그 때 느껴졌던 불쾌한 감정들은 지영에게 어떤 말이 하고 싶었던 걸까.




지영은 언제나 자기 할일은 알아서 잘 해내는 아이였다. 말하지 않아도, 기대이상으로, 잘 해내던, 칭찬받는 아이였다. 어느 모임을 가서도, 본인이 할 일이 아니여도 솔선수범하는, 그래서 어쩌면 호구였을지도 모를, 그런 사람이었다. '내 할일은 내가 알아서 잘 해내는 책임감 있는 사람'은 지영을 관통하는 수식어구였다. 그리고 지영이 스스로를 지탱하는 존재의 이유였으며,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는 핵심이었다.




지영은 지나온 인생들을 돌아보면, 스스로도 납득하기 조금은 힘든 결정들이 있었다. 물론, 때마다의 최선의 선택이었고, 결과적으로도 본인이 원하던 길로, 그 방향으로 잘 나가고 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지영은 자신이 성장을 추구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도전적인 목표는 왜 갖지 않았었나 의문을 가졌었다. 그것이 석사학위를 받는 동안에도 가장 큰 의문이자 풀리지 않는 이슈였다.




지영은 누가봐도 성취지향적이고, 도전적이고, 적극적이고, 낙관적이었다. 다양한 경험들에 열린 마음으로 뛰어들었고,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렸고, 때로는 대표를 맡아 전체를 이끌어가는 경험들도 마다하지 않았다. 언제나 자신이 속한 그룹에서 필요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고, 주변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다독이며 함께 나아가려는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었으며, '고맙다, 수고했다'는 말을 연료삼아 젊음을 불태웠다.




지영은 그저 자신을 '경쟁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 정도로만 생각했다. 한때는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내가 되자'라는 좌우명으로 살아가기도 했다. 다른 사람과의 경쟁, 내가 우위에 서는 것,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결과적인 성취보다는 '잠재력'에 더 관심이 많았다. 어떻게 더 나아질 것인가, 어떻게 잘 적응할 것인가. 그런 궁극적인 가치들이 지영을 석사과정으로 이끌었고, 상담심리를 전공하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는 거짓말처럼 희진쌤이 있었다.




교육대학원에서 상담심리를 전공하고, 박사과정에서 코칭심리학을 전공하면서 지영은 항상 가슴 속 한켠에 왜 자신은 성장을 추구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도전적인 목표는 갖지 않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이 최근에 겪고 있는 불안함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되었다.




지영은,, 항상 본인의 능력을 80%정도만 발휘해도 충분히 존재의 가치를 느끼고, 본인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안정감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도전적인 목표를 세울수록 자신의 부족함과 직면해야 했기에, 그 부족함이 자신의 존재가치에 스크래치를 남길 수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고 피한 것이다. 남들은 대학을 졸업할 때 더 많은 자격증을 따고, 첫 사회생활을 더 좋은 연봉과 조건에서 시작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을때, 지영은 이를 외면했다.




지영의 능력으로는 말도 안되는 곳에 환대를 받으며 취업을 했고, 합리화했다.





"이건,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야.


그러니까 나를 위한 옳은 선택이었어."






.


.


.






지영은 고등학교부터 기숙사생활을 했다. 고향에서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면서 2주에 한번씩 집으로 가는 생활을 3년간 했다. 그 3년간의 경험이 지영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확실하다. 한창 사춘기 시절에 부모님과 부딪히지 않고, 기숙사 생활을 해서 다행이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2주마다 한번씩 가는 집, 부모님과 조부모님은 항상 그녀에게 지지적이고, 애틋한 존재였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는 내 할일을 잘 하고 있으니,

걱정마세요 엄마."






어쩌면 여고생이었던 지영이 가슴에 품고 있었던 것은 이 한마디가 아니었을까. 지영은 가족들, 특히 엄마가 자신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으면 했다. 적어도 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에 가까웠다. 어린 지영이 바라보는 엄마는 항상 바빴다. 지영에게는 든든한 조부모님이었지만, 지영의 엄마는 맏며느리도 아니었음에도 시골마을에서 시어른들을 모시며 살았고, 아이를 셋 낳아 길렀으며, 아버지가 운영하는 체육관의 아이들을 시간맞춰 차량운행을 했다. 아침을 단 한번도 걸러본 적이 었으며, 매 끼니를 대충 떼웠던 적도 없다. 매달 은행을 돌며 이자를 찾아 시장에서 장을 보았고, 매주 학교에 저금하는 날이 되면 어김없이 10만원을 챙겨주셨다. 집은 항상 청결했고, 지영이 아침에 눈을 뜨면 어머니는 공부를 하고 계셨다. 주로 루틴이 있어서 한자를 쓰거나 영어단어를 외우거나, 책을 읽었다. 어찌나 검소하고 알뜰했는지, 그 흔한 연습장도 쉽게 쓰지 않고 달 지난 달력 뒷편에 쓰거나 이면지를 활용했다.




지영은 엄마가 돌아가신지 꼬박 10년이 되었는데도, 엄마는 항상 눈물버튼이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한번도 제대로 엄마를 보내주지 못했을지 모른다. 지영의 엄마는 평생을 얼굴을 모르는 사람들의 제사상을 차리는 것이 너무 지겹고 힘들었다며 자신은 땅에 묻지도 말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몰랐던 지영은 그런 엄마의 뜻을 받아, 평소 자주 가시던 산책로에 재를 뿌렸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엄마는 그렇게 아프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는 곳으로 떠나갔다.




그때에는 가족간 이견이 없이 조용히 그리 되었던 일들이, 왜 조금더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았나 원망스럽기도 한 지영이다. 그게 최선이었을까. 엄마가 보고 싶을때 지영은 어디로 가야할지,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 그저 가슴을 부둥켜 안고 있을 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10년이란 시간이 흐른 것이다.




.


.


.




지영은 최근의 일련의 감정들이 오롯이 그녀 때문은 아닐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최소한의 가이드라인도 없이, 실무자인 지영에게 알아서 하라고 해 놓고, 정작 결과물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만한 피드백을 하기보다는 잘못되었다는 한숨과 짜증 섞인 반응을 보인 그녀였다. 일이 지나고 보니, 그녀에게도 그닥 결정권이 없는 업무의 영역이었고, 결국에는 센터장님의 컨펌을 받고 나서야 일이 진행되었다. 삽질을 하면서도 정작 지영은 본인이 삽질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그저 자신이 부족해서 그녀의 기준에 만족하지 못했구나라며 스스로를 탓했다. 처음부터 지영에게 맡길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녀는 지영에 대한 불만족을 항상 한숨과 짜증으로 표현했고, 지영은 본인의 역할을 충분히 해 내고 있지 못한 스스로에게 불안을 느꼈던 것이다. 그냥 '재수없네 퉤' 하고 말면 그만일 일이였다. 그리고 누군가는 분명 그렇게 했을 것이다. 다만 지영에게는 달랐던 것이다. 그녀가 쏘아올린 불쾌한 감정은 지영의 불안을 자극했고, 그것이 아직 해소되지 않은 엄마에 대한 애도를 자극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작가의 이전글#4. 인생은 대체로 고통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