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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darc Feb 18. 2024

3.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신입초반 퇴근시간이 되었다는건 선배사서들의 인사소리에 알수 있었다. 

6시 5분정도면 사무실의 문이 열리고 자료실 담당선생님 두명은 자료실을 마감하고 깔끔한 인사를 남기고 퇴근을 했다. 심지어 야근 행사가 있는 날에도 나와 총괄사서님만 남은 상태로 인사를 하고 먼저 들어가셨다. 

처음부터 나도 이 인사를 부럽게 쳐다보고 있었던것은 아니였다.  

첫날엔 나도 당당하게 이 대열에 합류하여 공송하게 인사를 하고 퇴근을 했다.


그렇게 6시 퇴근시간에 맞춰 "칼퇴"를 한지 일주일이 지났을까? 


매일 퇴근하지 않는 총괄사서님과 도서관팀의 주임님을 보며, 

혹 내가 빠르게 업무를 하지 못해서 남으시는걸까?

하는 고민을 하게되었다. 


그래서 일을 빨리 배워 야근의 업무를 덜어주고 싶었다.


“도와드리고 갈게요”


퇴근하려고 짐을 싸고 있다가 마주친 관장님의 눈썹에 동정심과 미안함이 묻어나면서 나는 그 말을해 버렸다. 처음에 괜찮다던 총괄사서님은 거듭된 제안에 환하게 웃으셨다. 

함께 웃었던 이날, 이 시간 부터 수다르크의 야근기가 시작되었다.


정말 매일을 늦게 갈 수 있을까? 신기하게 업무가 매일 있었다. 이때의 나는 그래도 즐겁기는 했다. 

내가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해가면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행사의 홍보물 안내물등의 리플릿의 수정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디자인적인 요소를 도와주고 기안을 도와주고 엑셀을 정리해주면서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는 야근동기가 되어있었다. 


“오늘도 야근해요? 아이고 먼저 들어가 볼게요! “


매일하는 야근인데도, 당연하게 느끼다가도 퇴근할때 걱정스런 말투로 가버리는 자료실 선배들이 조금 얄미웠다. 나보다 경력은 많았지만 자료실에서 또는 정리실에서 편하게 있는거 같은 느낌도 들고 행사때도 책상배열이나 안내등을 도와주지 않고 그냥 쌩하고 가버리는 모습을 보며 가끔은 "왜 저렇게 도서관일을 신경쓰지 않고 일하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거 같다. 

매일 야근을 하다보니 가끔 친구들과의 약속으로 6시에 나가야 할 때면 너무 큰 죄책감이 찾아오는 나였기 때문에 당당한 퇴근을 하는 자료실 선배들이 부러웠던거 같다. 


“저 죄송한데, 오늘은 친구랑 약속이 있어서 먼저 들어가 볼게요”


말을 하면서도 놀러간다는 핑계가 미안해다. 근데 또 같이 나가는 선배들은 당당하게 퇴근하는데 난 왜 미안해 해야하지? 라며 이중적인 반감이 들었다. 사실 이 시기엔 아무도 나에게 "수다르크, 왜 야근안해?" 라고 한 사람이 없음에도 말이다. 


 특히 모든 사람들이 일찍 퇴근하는 주말에 문화강좌 담당자라는 이유로 7시에 강좌실의 청소가 끝나면 문을 잠그고 퇴근해야한다는 총괄사서의 말은 좀처럼 받아드려지지 않았다. 이때는 야근에 대한 수당이 따로 지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선배들과 선생님들은 쌩하고 퇴근하는데 진짜로 야근을 해야하는것에 대한 반감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던거 같았다. 


“치.. 나도 칼퇴할 거야!” 다짐을 했지만 막상 야근을 하는 총괄사서와, 도서관팀 주임님을 보면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미안함!… 왜 도대체 미안한지 모르겠지만 먼저 들어가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 컸다.


그렇게 몇 달을 8시에 퇴근하던 어느 날, 불만과 미안함에 고민을 가지고 동창회에 가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은 날씬해지고 더 이뻐졌는데, 요가운동과 식이 다이어트를 한다고했다. 

직장이 멀기 때문에 월수금은 칼퇴해서 다닌 다는 말을 곰곰히 듣다가, 맥주잔을 내려놓으며 박수를 쳤다. 


유레카!!


"그래! 운동을하자!! 몸이 좋지 않아서 운동을 시작했다고 하는거다!"


운동이라고 하면 놀러간다는 것 보다 칼퇴를 하는 이유가 근사해보였다.  

다음날 퇴근 후 동네 요가학원을 찾아가 3개월을 등록했다. 월급이 엄청 작았던 시절이라서 3개월의 45만 원의 요가 비용이 후들후들했지만 매일 요가 핑계로 운동도 하고 퇴근도 할 생각에 신나 있었다.


운동을 끊고 돌아와 웃음을 머금고 잠이 들었던거 같다. 

다음날 점심시간 나는 활짝 웃으며 A총괄사서와 주임님 앞에서 말했다.

“저 몸이 너무 안좋아진거 같아서 운동을 알아보다가 요가를 등록했어요. 이젠 못해도 6시 반에 나가야 할 것 같아요~ 행사 스케줄이 야간에 있을때는 조정해 볼게요”

"아~ 그래요!"


칼퇴를 한다는 선포에 싫어함도 없는 총괄사서의 깔끔한 대답이 돌아왔다. 억지로 야근을 했던건 나 혼자의 눈치로 시작되었고, 나 혼자 느끼는 어려움일 수 있다. 하지만 총괄사서가 퇴근하지 않던 사무실에서 내가 칼퇴를 하는 미안함과 불편함이 없어졌다. 


운동을 시작하고 야근은 확실히 업무가 있을때만 하게되었다. 


“운동이 있어서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해방의 말이었다.

무한야근이 드디어 해제되었다.


드디어 내가, 내가 저기 선배들과 함께 당당하게 인사를 할 수 있었다.



*부연설명

이 당시에 사무실 근무는 모든 사서들의 기피업무였다. 

그렇기 때문에 선배인 사서들이지만 사무실업무를 하기 싫어했고, 

할 수 없이 신입사서들이 "서무"라는 업무에 자료실 업무를 배정 받았고

정말 많은 잡무업무를 진행했다. 


돌이켜 보면 이때는 업무를 보조해 주는 직원들도 많아 

자료실 업무... 정말 좋았을텐데

아쉽게도 지금은 이 선배들 처럼 자료실을 편하게 일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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