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그날 싸웠을까

처음으로 서로의 선이 어긋난 날

by 서쪽 침실

그날은
정말 사소한 날이었다.

결혼한 지 한 달쯤 되었고,
우리는 아직
싸우는 법을 몰랐다.

결혼은 순조로웠다.
상견례 장소도, 예식장도, 신혼여행지도,
스드메도, 신혼집도, 예물도
그 어떤 선택에서도 트러블이 없었다.

우리는 둘 다
직장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마치 협력사를 대하듯
서로를 조심스럽게 대했다.

타협해서 결과물을 도출하는 데에는
둘 다 귀신처럼 능했다.
갈등의 원인이 될 만한 일은
애초에 만들지 않았다.

서운한 감정도
각자의 방식으로 처리했다.

그렇게,
일 년 뒤 우리의 결혼생활이 시작됐다.

직장과 집이 가까워진 것 말고는
삶이 크게 달라진 것도 없었다.
결혼식 전날까지 야근했고,
예식 시간을 주말 오후 다섯 시로 잡은 이유도
회사 일이 많아서였다.

‘시간을 쪼개 결혼했다’는 말이
정확히 들어맞았던 시기의 우리였다.

신부용 마사지 쿠폰도
다 쓰지 못한 채 결혼식을 맞이했고,
고가의 비용이 아쉬워
결혼 후에도 몇 달간 마사지샵을 다녔다.

그즈음,
남편의 가장 절친이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서로의 사생활을 다 아는 사이.
우리 결혼식에서
사회까지 봐줬던 사람.

그의 이름은
영호였다.

남편은
조심스러운 사람이었다.

항상 자기가 먼저 가봤던 장소에만
나를 데려갔다.
본인도 처음 가는 곳이면
미리 다녀왔다고 했다.

운전대를 잡고도
바로 출발한 적이 없었다.
내비게이션으로 목적지를 한 번 훑고 나서야
차를 움직였다.

그때는 몰랐다.
그가 ‘처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는 걸.

소개팅도
내가 거의 백 번째였다고 했다.

그런 그의 절친이라니.

안경 너머의 인상이
남편과 놀랄 만큼 닮아 있었고,
어느 장소를 가든
“여긴 영호랑 왔던 곳이야”라는 말이 따라붙었다.

마치
전국 곳곳에
영호와의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사람 같았다.

영호의 웨딩촬영 장소는
공교롭게도
내가 다니던 마사지샵 근처였다.

퇴근 후 나는 마사지샵으로,
남편은 웨딩촬영장으로 향했다.
내가 먼저 끝나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기다렸다.

커피를 절반쯤 마셨을 때
남편이 들어왔다.

“영호 씨 웨딩촬영 잘했어?”
“응, 잘했지.”
“신부 예뻐?”
“뭐, 자세히 안 봤어.”
“살 많이 뺀 것 같아?”
“아이고,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사진 봐봐.”
“안 찍었어.”
“그래? 가서 좀 찍어주지 왜.”
“그냥 영호 얼굴만 잠깐 보고 온 거야.”

화제는
언제나 그렇듯
곧 내 이야기로 넘어갔다.

“자기랑 퇴근하고 만나서
집에 같이 가니까 너무 좋다.
이런 맛에 다들 결혼하나 봐.”

집에 가는 내내
나는 하루 동안 쌓아둔 이야기들을
운전 중인 남편 옆에서 쏟아냈다.

집에 도착해
남편이 씻으러 들어간 사이,
그의 휴대폰 진동이
계속 울렸다.

전화인지 문자인지 헷갈리던 순간,
화면에 메시지가 떴다.

오늘 00이 생일 축하해 줘서 고맙다.

생일?

나도 모르게
메시지를 열었다.

대화창 안에는
조금 전까지
두 사람이 주고받은 말들이 있었다.

나 지금 끝났어.
00씨 케이크 사서 갈게.

고맙다. 깜짝 파티 도와줘서.
도착하면 내 동생한테 연락해.

그리고
짧은 영상 하나.

그날은
영호의 예비신부 생일이었다.
두 남자가
신부의 생일을 위해
작은 이벤트를 준비한 날이었다.

그런데,
왜 말하지 않았을까.

카페에서
한 시간이나 함께 있었는데.
웨딩촬영이 어땠는지
내가 그렇게 물어봤는데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게 숨길 일인가.
아니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일인가.

샤워기 소리가 멈췄을 때
휴대폰을 제자리에 두고
침실로 들어갔다.

“자기야, 어디 있어?”
“티비 보고 있던 거 아니었어?”

잠시 침묵.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오늘 00씨 생일이었어?”

“…어? 어.”

“나, 자기 핸드폰 봤어.”

놀란 눈빛.

“일부러 본 건 아니야.
계속 진동이 울리길래.”

그리고
나는 감정을 쏟아냈다.
왜 말하지 않았는지,
왜 물어봤는데도 이야기하지 않았는지.

그는 말했다.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았어.”
“자기, 00씨 잘 모르잖아.”

그 말이
그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에게
말하지 않는다는 건
속이려는 일이 아니라,
지키고 싶은 선이 있다는 뜻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날 처음으로 느꼈다.

나는 이미
모든 것을 나누는 쪽으로
한 발 더 들어와 있었고,
그는 아직
자기 세계의 문을
반쯤만 열어두고 있다는 걸.

“근데…
어떻게 내 폰을 몰래 볼 수가 있어?”

그 말과 함께
대화는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감정 대신
행동이 문제로 올라왔다.

그날 우리는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
대화를 멈췄다.

결혼한 지 한 달.
소개팅 자리에서
TMI를 쏟아내던 남자였지만,
그 이후로는
그런 적이 없었다.

나는 그날 밤
쉽게 잠에 들지 못했다.

그의 마음 어딘가에
소중히 지켜온 씨앗이
있었던 건 아닐까.

아직은
나보다 더 오래된 시간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 씨앗을
너무 이르게 건드렸다는 걸,
그날 밤
처음으로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