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함이 서로를 다치게 할 때
주 1회,
남편은 퇴근 후 온라인 수업을 들었다.
중간중간 쉬는 시간이 있어
거실로 나오는 남편에게
밥을 차려달라고 했다.
이미 다 되어 있는 음식을
그릇에 담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는
본인의 수업 시간을 방해한다며
투덜거리면서 밥을 차렸다.
그날은
그냥 그런 날이었다.
일주일 뒤,
남편은 같은 시간에
개인 약속을 잡았다.
“수업은 어떻게 해?”
묻자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배경 화면 뿌옇게 해 놓고
노트북 켜두면 되지.”
지난주
나에게 했던 말은
까맣게 잊은 얼굴이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그는
자기 기준으로
세상을 정리해 두는 사람이라는 걸.
과거의 나라면
분명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지난주에 뭐라고 했어?”
“말이 다르잖아.”
그리고 과거의 남편 역시
회사에서 야근을 한다며
또 다른 거짓말을 했을 것이다.
그동안 남편이
솔직하게 말했을 때마다
나의 지적은
그에게 이런 감정을 남겼을 것이다.
‘괜히 솔직하게 말했다…’
나는
본인의 기준대로
사실을 숨기는 남편이
이해되지 않았다.
나의 기준에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지적하면
그가 바뀔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행동을
교정하고 싶었던 건
남편이 아니라
나의 욕심이었다.
솔직히 말했을 때보다
거짓말을 들켰을 때
싸움의 수위가 훨씬 높다는 걸
깨달은 남편은,
예전보다
조금 더
말해주기 시작했다.
그 변화가
성장이었는지,
아니면
충돌을 피하기 위한
조정이었는지는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돌고 돌아
생각은 결국
시어머니에게 닿았다.
결혼 후
나는 내 부모에게 하던 방식 그대로
시부모에게도 솔직했다.
그래도 가족이니까.
의심을 접고
흐린 눈과 둔한 귀로
내 방식대로 소통했다.
하지만 그 솔직함은
늘 다른 방향으로 해석되어
오해를 낳았고,
화살이 되어 돌아와
나를 관통했다.
그때는 몰랐다.
솔직함이
통하는 가족과
통하지 않는 가족이
있다는 걸.
그 시절의 나에게
가면은 하나뿐이었다.
사회생활용 가면.
결혼 후
새로운 가면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결혼생활 중반을
훌쩍 넘긴 뒤였다.
이 가족의 패턴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새로운 가면에는
남편을 통해 학습한
말하지 않음과
적당한 거리가
함께 탑재되었다.
테스트도 해봤다.
신기하게도
전과 같은 큰 갈등은
사라졌다.
내 기준에는
맞지 않는 선택이었지만,
살기 위한
생존본능 같은 것이었다.
그제야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편의 거짓말이
두려움을 가장한
생존본능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걸.
그리고
내가 쓰기 시작한 가면 역시
어쩌면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걸.
다만,
그때의 나는
그 사실을
정확히 이해할 만큼
아직은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