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처음으로 낯선 언어를 들었다
상견례 장소 어디로 할까?
깔끔한 한정식이 좋겠지?
한옥 스타일인데... 분위기 어때?
좋다. 후기도 좋은데? 음식도 맛있대.
주말 데이트 중
카페에 나란히 앉아
열심히 장소를 서치 했다.
바로 예약 완료!
사귀고 난 이후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주말 데이트마다
차근차근 체크리스트를 채워나갔다.
우리 집을 먼저 방문했던 남편은
우리 가족들이 너무 좋았다고 했다.
특유의 웃음으로
언니들은 처음 본 남편을 반겨줬고,
식사 후에는 같이 보드게임도 했다.
이런 화목한 분위기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무조건 오케이라고...
남편은
어떤 가정을 꿈꾸던 것일까.
불과 세 시간 동안의 분위기로
화목하다 아니다가
판단이 된 걸까.
상견례 당일,
남편 가족은 10분 정도 늦었다.
주말 서울의 교통체증으로
오랜 시간 같은 자세가 힘들었는지
시어머니는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상견례 장소로 들어왔다.
첫인사 때
나를 보며 활짝 웃던 인상과는
대조적인 얼굴이었다.
부모님들끼리의 첫 만남.
나는 눈치가 보였지만,
우리 부모님은 전혀 개의치 않아 보였다.
곧
어른들끼리의 인사가 시작되고,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시어머니가 먼저 입을 뗐다.
“제가 얼마 전에 허리를 다쳐서
지금 좀 불편한 상태예요.”
나름 신경 쓴다고
좌식 테이블이 있는 한정식집으로 골랐는데,
아차 싶었다.
우리 아빠가 나서
어색한 분위기를 풀었다.
애연가인 시아버지가 잠시 자리를 비우자
같이 따라나가 담배도 태우셨다.
내가 마지막으로
아빠가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본 건
초등학교 이후 처음이었다.
식사가 이어지면서
시어머니의 표정은
조금씩 풀어졌다.
“얘는 사춘기도 없던 애예요.
속 한 번 썩인 적 없어요.”
우리 엄마는
미소를 띤 채 경청하고 있었지만
호응하지는 않았다.
그때
시어머니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남편 뒤에서 조종하지 마라.
할 말 있으면
남편 통해서 하지 말고
나한테 직접 해.”
인자한 말투였지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조종?
조정?
그게 무슨 말이지.
‘조종’이라는 단어는
비행기 조종사에게서만 접했지,
단 한 번도
일상에서 써본 적이 없는 말이었다.
상견례를 마치고
집에 가는 내내
‘남편 조종하지 마라’라는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에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 말 한마디에
얼마나 많은 뜻이 숨어 있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집에 도착했다.
우리 부모님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홀가분해 보인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표정이었다.
그날은
우리 부모님의 세 번째 상견례가 끝난 날이자
‘조종하지 말라’는 말이
내 삶에 처음으로 자리를 잡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