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주지 않는 구조

공유되지 않은 사람

by 서쪽 침실

나는 결혼 후

마음만 먹으면

아이를 가질 수 있을 줄 알았다.


요즘은 다들 자기 관리 잘하잖아요.

진짜 나이는 실제 나이에

0.8을 곱한 거래요.

과장님은 진짜 동안이세요.


그 말이

위로처럼 들리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자궁 나이는

원래의 시간대로 가고 있었다.


스트레스,

잦은 출장과 야근.

불규칙한 식사,

수면 부족.


아무리 기다려도

아기 천사는 오지 않았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했던

여직원 둘이

같은 해에 임신을 했다.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점점 불러오는 배가

자꾸 눈에 들어왔다.


“이제 남자 직원만 뽑으랜다.”

사장실에서 한소리 듣고 나온

팀장님의 한숨이

내 귀에 걸렸다.


그땐

그랬다.

지금이라면

큰일 날 말이지만.


나를 아끼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마음이 편해야 해.


나는 결국

회사를 그만뒀고,

눈물겨운 임신 준비와 출산을 거쳐

어느덧

돌잔치를 앞두게 됐다.


“살 더 빠진 것 같네.”


김부장님을 다시 만난 건

그 무렵이었다.


“생각해봤어?”


그는

스타트업 팀장 자리를

제안했다.


“돌잔치 때까진

일주일에 두 번만 출근해.

내가 대표님한테 얘기해둘게.”


워킹맘인 그녀는

내가 회사를 떠날 때도,

다시 돌아올 때도

늘 많은 부분을 배려해줬다.


그렇게

나는 다시 일하게 됐고,

얼마 후

시댁 근처로 이사했다.


가드 설치,

매트 시공,

어린이집 상담,

어머니께 드릴 용돈과 체크카드까지.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서

내 인생의

세 번째 막이

조용히 시작됐다.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남편보다 먼저

퇴근했다.


집에 들어왔는데

인기척이 없었다.


어머니께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자기야, 집에 아무도 없어.

어머니 어디 가신지 알아?”


잠시 뒤

답장이 왔다.


“이모네 집이래.”


이모님 댁은

차로 20분 거리였고,

어머니는

운전을 못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늘 정돈돼 있던 거실,

물기 하나 없던 주방.


그동안

내가 온다고

치워두신 게 아니었구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잠시 후

현관문 여는 소리가 났다.


“너 뭐 하니?”


나는 화장대 앞에 앉아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겨 있던 중이었다.


“어른이 왔는데

나와서 인사도 안 하니?”


잠깐의 공백.


“이거

이모가 ㅇㅇ이 먹이라고 준 거야.”


모든 말이

귀에 걸렸다.


마치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인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내 시선은

아이에게로만 향해 있었다.


어머니는

아이 짐을

한가득 내려놓고

바로 돌아가셨다.


잠시 뒤

전화가 울렸다.


“너 아까 그 태도가 뭐니?”

“어른이 왔으면

바로 나와서 인사를 해야지

어디서 배운 행동이야?”

“너희 부모님이

그렇게 가르치디?”


죄송하다고 말하기도 전에

선은

이미 넘어가 있었다.


“앞으로 00이

봐주지 마세요.”


나도 모르게

감정적인 말이 튀어나왔다.


"그래?알았다.

내일부터 너희집 안 가마."


전화는

뚝,

끊겼다.


퇴근한 남편에게

물었다.


“어머니

매일 이모네 가셨어?”

“우리 출근하면

이모가 데리러 오신 거야?”


남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걸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도

나에게 말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이건

개인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 아이의 일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한 마디 더 해봤자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을 것 같다는 걸

직감했다.


그리고 그날,

나는

남편이 왜 늘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쪽에

서 있었는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