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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나무 Nov 28. 2023

앵커링 효과

Anchoring effect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란 최초에 제시된 숫자나 첫 말이 기준점 역할을 하여 이후 판단에 영향을 주는 현상을 뜻한다. 앵커링 효과는 '정박효과' 혹은 '닻 내림 효과' 등으로도 불린다. 배가 닻을 내리면 연결한 밧줄의 범위 내에서만 움직이는 것처럼 처음에 제시된 숫자나 말 등이 기준점이 되어 판단에 왜곡을 일으키고 편파적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독립적 사고를 통해 결정하고 판단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입된 정보에 의해 의사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심리학자 아모스 트버스키와 대니얼 카너먼이 숫자에 관한 사람들의 결정 과정을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진행했다. 대학생들을 연구대상으로 하여 0부터 100까지의 숫자가 쓰인 돌림판을 돌리게 했다. 이 돌림판은 어떻게 돌리든 10 혹은 65에 멈추도록 고안되었다. 돌림판이 멈추면 "유엔 회원국 중 아프리카 국가의 비중이 얼마나 될까요?"라는 질문을 했다.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돌림판이 10에서 멈춘 학생들은 25% 일 거라고 응답한 반면 돌림판이 65에 멈춘 학생들은 아프리카 국가 비중이 40% 일 것이라고 대답했다. 정답을 모르는  상황에서 질문을 받으면 기존에 얻은 정보를 참고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실험 참여자들도 돌림판을 돌려 나온 숫자와 아프리카 회원국 비중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도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사람은 숫자나 금액에 관한 결정을 내릴 때 답을 알지 못할수록 참고 기준을 찾는다고 한다. 참고할 수 있는 정보가 없으면 제일 가까운 곳에서 접할 수 있는 무관한 숫자라도 기준으로 삼으려는 게 사람의 심리라고 한다.




마트나 백화점에서 세일을 할 때 앵커링 효과가 자주 활용된다. 최초 가격을 적정 가격보다 훨씬 높게 책정해 물건의 가격이 큰 폭으로 할인된 것처럼 느끼도록 한다. 얼마 전 마트에서 할인된 가격에 파는 물건을 보았다. 무려 30%나 할인한다고 적혀 있었지만 원래 팔던 가격표가 제거되지 않아 실제로는 5~10% 정도만 할인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세일이니 할인이니 하는 특가 행사가 그다지 싸게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이런 눈속임 때문이었을 공산이 크다. 그나마 원래 가격보다 5~10%라도 할인해 파는 곳은 양반이다. 어떤 곳은 원래 팔던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을 책정해 마치 대폭 할인한 것처럼 속여 파는 곳도 있다고 한다. 3만 원짜리를 특가 세일이라는 말에 속아 5만 원에 산다면 그야말로 "약은 고양이 밤 눈 어둡다"가 들어맞는 상황이 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앵커링 효과를 주의해서 물건을 구입해야 하지만 반대의 입장, 상품을 판매하는 판매자의 입장이라면 이러한 심리 현상을 활용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어느 샌드위치 전문점에 직원 두 명이 있었다. 한 직원은 다른 직원에 비해 항상 매출이 높았다. 과연 무엇이 두 직원 간의 매출 차이를 유발했을까? 매출을 많이 올린 직원의 비결이 궁금해 살펴보니 매출이 높은 직원은 앵커링 효과를 십분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매출이 낮은 직원은 주문할 때 고객에게 "계란 프라이도 추가할까요?"라고 물은 반면 매출이 높은 직원은 "계란 프라이는 한 개 드릴까요? 두 개 드릴까요?"라고 물었다. 고객의 70%는 계란 프라이를 한 개 혹은 두 개를 달라고 주문했고 30% 고객만이 계란 프라이는 주문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이렇다 보니 두 번째 직원의 매출이 항상 더 높았다. 고객들이 처음에 들은 말을 기준점으로 생각해 반응했기 때문이다.




<이솝우화>에도 닻 내림 효과를 활용하는 박쥐의 처세술이 나온다. 온갖 짐승의 왕 사자 앞에서는 자신이 쥐와 비슷함을 강조해 들짐승인 것처럼 처세하다 독수리 앞에서는 자신의 날개를 펼쳐 보이며 날짐승인 것처럼 처세하는 간교한 박쥐의 처세술이 나온다. 이렇듯 박쥐가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할 수 있는 것은 앵커링 효과를 통해 사자와 독수리를 설득했기 때문이다. 심리 법칙에 대해 알면 알수록, 모르면 불리해질 수 있고 손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심리 법칙을 활용해 영악하게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자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호구가 되진 않아야 할 것 같다. 눈뜨고 베이는 일 같은 억울한 일은 당하지 않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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