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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나무 Sep 07. 2023

골목 예찬

어릴 적 살던 동네는 골목을 사이에 두고 집들이 빼곡히 연결되어 있었다. 골목을 떠올릴 때면 유년의 기억이 소환된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골목이었다. 어린 시절을 골목에서 보냈고 골목에서 성장했다. 골목엔 삶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다양한 이야기가 흐른다. 지나간 옛 추억이 숨 쉰다. 누구네 집 강아지가 새끼를 낳았다는 소리, 누구네 집 딸이 전교 1등을 했고 누구네 집 아버지는 승진을 했다는 소리, 오늘 저녁 메뉴는 된장찌개라는 소리, 다양한 이야기들이 골목을 타고 흐른다. 마음 울적한 날엔 골목을 걷고 싶다. 사람 냄새나고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간직된 골목을 걷고 싶다. 골목을 걷다 보면 누군가의 삶의 궤적이 느껴진다. 내가 살아온 삶이 누군가의 삶과 교차된다. 골목은 사유하게 하고 사색하게 만든다. 골목을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설픈 철학자가 된다.




골목을 걷고 싶어도 도시 개발 사업과 도시 재생 사업으로 골목을 찾기가 쉽지 않다. 예전엔 흔히 볼 수 있던 골목은 이젠 자취를 감추었다. 뻥 뚫린 아스팔트와 보도볼록은 자동차를 위한 길일뿐 사람을 위한 길은 아니다. 굉음과 소음, 매연을 품고 달리는 자동차와 함께 걷는 길은 고역이고 고통이다. 추억이 묻어 있고 사람 사는 이야기가 담긴 골목을 걷고 싶다. 도시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낡고 혼잡하고 정돈되지 않은 지역은 낙후 지역으로 낙인찍어 무조건 없애버리는 것이 도시를 깨끗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방법일까? 골목마다 담긴 사연과 추억을 없애버리고 특색도 없고 개성도 없는 획일화된 회색 건물만 건설하는 것이 진정한 도시개발인가? 걷고 싶어도 차도나 공원이 아니면 더 이상 걸을 수 있는 길이 없다. 이런 현실이 슬프다. 개발이라는 망령에 도취되어 편리함만을 추구하다 우리는 중요한 삶의 터전인 골목을 잃었다. 이젠 사색하며 천천히 걸을 수 있는 길을 피트니스 센터 가듯 일부러 찾아 나서야 한다.




다양성이 사라지고 획일화된 보도볼록과 아스팔트만이 존재하는 현실이 슬프다.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하고 독특한 문화가 있는 골목이 그립다. 특별했던 기억이 남아 있는 장소, 어릴 적 그 골목이 그립다. 햇살 좋은 날이면 곡식을 말리고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수다꽃을 피우던 골목 풍경이 아스라하다. 아이들은 고무줄놀이, 구슬치기, 땅따먹기, 얼음땡, 공기놀이, 제기차기하며 신명 나게 한바탕 놀이하던 골목이 아득하고 아련하다. 마음 울적한 날엔 골목을 걷고 싶다. 헛헛하고 공허한 감정을 바람처럼 날려줄 골목이 걷고 싶어 진다. 우리네 삶의 궤적이 묻어나고 특별한 이야기가 들려오는 그 골목을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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