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머넌트 노바라>
나오코의 동창인 미짱은 술집을 운영하며 고향에서 살고 있다. 미짱의 남편 히사시는 못 말리는 바람둥이로 미짱 가게의 여종업원들과 모두 바람을 피웠다. 지금은 새로 온 종업원과 눈이 맞아 필리핀에 가서 가게를 차리고 아이를 갖자고 꼬시는 중이다. 미짱과는 빚쟁이들을 속이려고 혼인신고만 한 사이라며 예전 바람피울 때와는 달리 진심을 다해 꼬시는 것 같다. 미짱은 참지 못하고 자동차로 불륜녀에게 돌진하지만 남편이 이를 막아서는 바람에 남편이 병원에 실려가고 미짱이 몰던 자동차는 폭발한다. 영화 속에서도 미용실에 모인 여자들이 한결같이 그냥 보내 버리라는 조언을 하지만 미짱은 내 남편이고 내 거라는 주장을 하다 결국 사고를 일으켰다. 미짱은 "이런 사랑이라도 할 수 있는 게 어디야? 좋아하는 남자가 없어진다는 거 난 견딜 수 없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람이 소유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집착하고 매달리고 욕심낸다고 사람을 소유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일방적인 사랑은 오히려 사람을 더 외롭고 지치게 만들 뿐인데 사랑 자체에 집착하는 미짱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니 마음이 얼마나 황폐하고 황량하면 저럴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결국 미짱은 그토록 집착하던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가 된다.
영화 <퍼머넌트 노바라>는 사랑에 상처받고 아픈 외로운 여자들의 이야기다. 사람의 외로움은 사람으로 채워지고 달래지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사랑하게 되면 후폭풍을 감당키 어렵다. 아무리 사랑 없이 못 산다고 해도 아무나 사랑할 순 없는 노릇이다. 고립되지 않고 혼자 살기 싫어 무조건 참고 맞추며 살 순 없다. 세상이 원하는 착한 여자로 사는 건 외로움보다 더 한 형벌일지도 모른다. 혼자라고 꼭 외로운 건 아니다. 오히려 둘이라서 더 외로운 경우도 많다.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 마음을 나누고 사랑할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고 불행한 건 아니다. 누군가가 있다는 건 그만큼 배려하고 양보하고 조율하고 희생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러다 한 사람이라도 마음이 변하고 사랑이 식으면 지난한 과정은 시절인연으로 끝나버린다.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배우고 행복했던 기억은 남겠지만 상처와 원망, 정성을 쏟은 만큼 밀려오는 배신감으로 인해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굳이 끊임없이 누군가를 사랑해야 한다면 외부의 대상이 아닌 자신을 사랑하면 어떨까 한다. 꼭 연애 상대가 아니더라도 가족, 친구나 지인 등 타인에게 공들여 봤자 허무함과 공허감이 밀려올 수 있다. 내가 베푼 만큼 돌아오지 않으면 박복하다며 자책하게 되고 서운한 마음을 갖기 쉽다. 타인에게 시간과 정성, 노력을 기울일 바에야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에게 시간과 정성, 노력을 쏟는다면 어떨까 싶다. 나와 끊임없이 마음을 나누고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위해 모든 시간과 열정을 불태운다면, 그래서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산다면 보람차고 행복하지 않을까? 행복한 개인주의자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