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병옥 Jan 05. 2023

꿈은 그 무게를 버티는 사람이 이룬다

1만 시간의 노력

     

김선옥,  푸른 자유,  2017

어릴 때부터 ‘꿈을 가져라’라는 말을 수없이 듣고 살았다. 그러나 꿈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막연하다. 뜬금없는 소망을 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으로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수준이라면 꿈이라기보다 선망 쪽에 가깝지 않나 생각된다. 절실한 꿈은 항상 품고 다니며, 그 무게가 부담되어도 그것 때문에 살맛이 나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다다를 수 있는 그 어떤 것이다.


나의 친구 중에 화가 김선옥 씨가 있다.

어렸을 때부터 화가가 꿈이었으나 처음부터 미대를 나온 것이 아니고 대학에서는 의류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패션 디자이너로 일하였다. 그러나 어릴 적 꿈을 잊지 못하여 나중에 다시 미술을 제대로 공부했다. 심지어는 작품도 왕성하게 제작하는 바쁜 와중에  미술대학 대학원까지 마쳤다.

그녀는 결혼 후에 아이들을 키우면서 집 근처에 마련한 작업실에서 미술학원을 겸하며 아이들도 가르치고 자신의 그림을 그렸다. 초기에 작품의 양은 많지 않았으나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스타일과 재질을 실험하며 자기의 세계를 만들어 갔다.

그는 행복한 인생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현실에서도 흔히 말하는 예술가의 까칠함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부드러운 성품의 소유자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을 보면 편안함과 동화적인 행복이 물씬 풍겨 나온다. 내가 그림에 조예가 깊지 않아 제대로 평을 할 수는 없지만, 그의 그림에서는 바탕의 풍부한 질감과 밝고 따뜻한 색채, 그리고 가정에서 여성들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 뿜어져 나와 식탁 앞에 하나쯤 걸어놓고 가족들과 늘 바라보고 싶은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예술적인 분야가 아니다. 나는 그쪽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전문적인 평을 할 자격도 없다.

주부라면 누구나 두 명의 아이들을 키우며 자기의 세계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안다. 살림, 육아, 가족 행사나 명절 같은 의식 준비, 양가 부모님들에 대한 의무 등등이 많은 여성을 주저앉힌다. 혹자는 할 일 다 해 놓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이런 종류의 일은 긴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몰입해야 결과물이 나온다. 아이들 낮잠 잘 동안, 저녁 준비한 뒤 가족들 들어오기 기다리는 동안 등의 잠깐의 흩어진 각각의 자투리 시간을 모아 실행할 수 있는 성격의 작업이 아니다. 결국 주부로서 해야 할 일을 한 뒤 밤잠을 줄여서 집중해서 이루어낸 일이다.

그래도 이 친구는 해냈다. 물론 추측하자면 모든 분야를 다 잘 해낸 것은 아닐 것이다. 우선순위가 낮은 것에는 에너지를 덜 썼을 것이다. 그러나 가족이나 친척 아무도 그에게 비난을 하거나 섭섭해하지 않는다. 주위 친구들과 가족들은 그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확실히 아는 몇 안 되는 사람이며, 스스로에게 진실하고 한계 내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작업실에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난 후 늦은 시간까지,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고 나서는 더더욱 작업에 매진하였다. 학자들이 이야기하는 1만 시간의 법칙 이야기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김 선옥 씨의 노력의 총합도 1만 시간이 넘지 않을까 생각된다.


거의 20년 전에 작은 전시회로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했지만, 이젠 큰 규모의 전시회에서 심심치 않게 그를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회사나 금융기관에서 주는 예쁜 달력과 책 표지와 카드, 그리고 병원과 같이 위로와 희망이 필요한 곳의 이미지에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처음부터 미술을 공부하고 유학 가고 지원받으면서 멋진 화실에서 많은 작품을 만든 예술가도 위대하겠지만, 나는 여성, 엄마, 주부 등 자신의 조건 안에서 꿈을 포기하지 않고 버티고 살아남은 친구가 더 대단해 보이고 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는 현재의 좋은 평가를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


그는 힘들게 꿈을 부여잡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롤모델이고, 중간에 포기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핑계에 불과하다는 메시지를 주는 사람이다.

그것을 알고 앞으로도 더 열심히 작품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 지금도 이미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작가이지만, 더 유명해지고 더 인정받는 좋은 작품을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빨래를 하며 새해를 맞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